이 학교는 전통적으로 학년 초(8월 20일 학기 시작) 5일 동안 캠핑을 갑니다. 아이들과 함께 캠핑준비목록에 나와 있는 대로 등산화, 방수재킷과 방수 바지도 사고 방수 캠핑 가방도 사고 나름 완벽하게 준비했더니 짐이 산더미네요. 왠지 스위스 사람들은 비가 와도 하이킹을 이어나갈 것 같았거든요. 비가 와도 어린이집 아이들도 산책하니까요. 여기 사람들은 편하게 대충 준비한다는데 그럼 캠핑 목록은 무슨 의미겠어요? 다 이유가 있어 목록에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단 다 챙겨 갔어요.
준비는 완벽한 것 같았지만 문제는 첫째(15살)가 어제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는 거예요. 캠핑이 코 앞인데… 어린아이가 아니니 당일 아침 네 몸 상태를 체크해 보고 결정하라고 했더니 가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침에 학교에 도착했어요.
8시 40분! 삼둥이들은 이미 교실로 들어가고 차 타러 가고 첫째 또래 아이들도 다 차를 타러 가는데 첫째 아이 가방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어요. 선생님들이 가방을 챙기시며 첫째 아이가 어디 갔냐 물으시기에 화장실에 간 것 같다고 어제 배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었다는 말을 전했어요. 잠시 후 아이가 나오고 여자 교장선생님이 모든 아이들을 위해 첫째는 갈 수 없다고 완강하게 말씀하시네요. 이런 확실한 거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어요. 아이도 화장실에서 돌아와서 그렇게 나쁜 컨디션은 아니라고 했지만 제가 한 “아팠다.”는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았어요. 그대로 캠핑 가방 메고 집에 돌아오는 길 첫째는 50분에 출발이라기에 심란해서 화장실에 다녀왔다며 서운해하는 눈치고 저는 앞으로 아이 스스로 말하지 않는 이상 나서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돌아왔어요. 한국에서는 이 정도 말로 아이를 출발 못하게 하진 않았겠지만 여기는 말도 문화도 다른 곳이잖아요.
첫째가 어차피 안 아픈 것은 아니니까 괜찮다며 저를 위로하네요. 그래서 엄마가 나선 것 정말로 미안하고 몸이 완전히 나으면 가자고 했어요. 서로를 위로하며 집에 돌아왔네요. 한동안 꿀꿀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어요. 누굴 탓하겠어요?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