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그녀는 코로나가 없어졌다며 2021년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 대뜸 선언을 했다. 그러더니 “난 이제 아시아를 여행할 거야”라고 했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정확히 3주 하고 이틀째 되는 날. 그녀는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를 몇 달에 거쳐 여행한 후 한국 행 티켓을 구입했다. 그녀와 여행지 어디에서든 만나자고 했지만 그게 한국일 줄, 꿈만 같았다. 하지만 하필 바쁜 시기였기에 그녀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과 사랑을 담아 나는 그녀에게 제안을 했다.
“애슐리! 너 내 집 써! 웰컴 기프트야!”
“오, 아니야 방세를 지불하고 싶어”
“ 아니야, 한국에서 이런 걸 ‘정’이라고 해”
‘정’이라는 의미에 대해 한참을 설명해준 후 그녀는 “ Thank you”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내 선물을 받았다. 내 집을 내어준 이유는 어렸을 적, 친구가 놀러 오거나 손님이 오면 항상 방을 내어주곤 했는데 나중에 멋진 어른이 되면 방이 많은 집에 살면서 방 하나쯤은 손님방으로 써야지 하며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현실은 5평 원룸 월세에서 산다. 원래 계획은 그녀와 한 침대에서 지내며 생활을 같이 하려고 했지만 나는 6시에는 무조건 일어나는 아침 형 인간이고 그녀는 해 뜰 때 자는 저녁 형 인간이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웃음)
그녀는 한국에 도착했고, 일주일 동안 격리를 해야 했다. 나는 그녀를 마중 나갔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그녀의 이름을 크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안겼고 한참을 방방 뛰었다.
“네가 여기에 있다니! 한국에 있다니! 믿기지가 않아.”
“나도 마찬가지야. 보고 싶었어”
“나도”
처음의 모든 대화는 느낌표와 마침표로 끝났다. 감탄사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물음표로 대화는 바뀌어 갔다.
“어떻게 지냈어?”
“코로나로 힘들었지?”
“여행이 얼마큼 그리웠어?”
“나는 얼마나 보고 싶었고?”
…
……
세계적인 질병 때문에 모두가 안녕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가족 모두가 심하게 걸려서 몇 달은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그 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아시아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여행이 너무 그리워서 밤마다 가고 싶은 나라를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고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얼굴도 있다며 말을 덧붙이며 싱긋 웃어 보였다.
그녀가 한국에 있다니. 다시 한번 믿기지가 않았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며 집에 도착했고 그녀에게 집을 소개했다. 내가 쓰던 하얀 침구에서 그녀를 위한 베이지색의 침구로 바꿨으며, 냉장고와 주방,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했다. 파란색 2인 소파와 하얀색의 원탁 테이블이 있고 그 앞에 투명 의자가 하나 더 있다. 그녀는 짐을 풀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맞은편에 앉았다. 하지만 앉아 있는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눈이 마주 치자 마자 꼭 껴안고 빙글빙글 돌았으니 말이다. 서로 깔깔되며 우리는 영국에서 봤던 처음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