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들을 보며 여행을 기억하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각 도시마다 진한 음악들이 존재한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없을 당시에는 좋아하는 노래들을 다운 받아 리스트를 어떻게든 만들어 20곡 정도를 핸드폰에 담아 여행을 했다. 여행을 하며 이어폰은 항상 나와 함께 였다. 음악은 여행을 하며 특별한 거리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가끔 한국인이 많은 여행지에 갔을 경우 내가 외국에 온 건지 한국에 있는지 하는 듯한 착각이 들 때면 음악은 그 현실을 낭만적인 나만의 장소로 바꿔주곤 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자기 전 다시 오늘 들었던 음악을 들으며 일기를 쓰다 보면 자연스레 노래가 각인이 되어버린다. 그런 노래가 지금까지 플레이리스트에 그대로 있고, 여행이 끝난 후 그 노래들을 듣고 있노라면 여행을 추억할 수 있는 자그마한 통로가 된다.
여행을 하며 들었던 노래 중 떠오르는게 몇 있는데, 나는 그 중 존 메이어의 ‘stop this train’ 을 너무나 사랑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조금은 나의 어릴 적 미국 어느 시골에서 지낼 때 가 생각나기 때문. 그 미국 가정 집에 있던 강아지는 조금 과장을 하면 나와 크기가 비슷했는데 이름은‘벨라’다. 그녀와 해가 저녁 8시 30분이 되 서야 지는 미국 북부의 시골 한복 판에서 해가 질 때까지 끊임없이 걷고 돌아다녔다. 끝 없이 펼쳐진 평지들은 하늘이 쏟아내는 노란 빛을 담아내기 바빴고 나만의 특별한 ‘Golden hour’였다. 이러한 광경들과 함께 나에게는 든든한 친구 ‘벨라’가 있었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기타 반주는 그 시간에 로맨틱함을 더해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저녁을 선사해줬다. 미국에 있던 어느 순간들 보다 벨라와 산책한 이 순간들이 더 생생히 기억이 난다. (비록 노래의 가사는 그 순간과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말이다.)
또 다른 추억도 있다.영국을 여행 하는 중 그 곳에서 알게 된 동갑인 친구 세 명과 꽤나 빡빡한 일정으로 런던을 돌아다녔던 날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금방 피곤했던 우리는 이른 저녁시간에 헤어져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 도착해 씻고 2층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고 있을 때 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런던의 야경이 보고 싶은 사람!”
2층침대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시간 30초, 옷 갈아입고 나가는 시간 까지 2분 30초. 버스정류장까지 5분. 연락이 오고 10분 채 되지 않는 시간 나는 런던의 밤거리로 나왔다. 12시에 가까운 늦은 밤이었기에 나이트 버스를 타고 빅벤*으로 향했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빛나는 밤의 분위기를 느낄 생각에 들떴다. 불이 들어온 건물들을 마주 했을 때 예쁘다는 탄성이 나왔다. 5월 초 였던 런던의 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추웠고 바람은 더 매서웠지만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차가운 계단에 앉아 이어폰을 꼽고 ‘dancing in the moonlight’ 를 들으며 가만히 그리고 또 바라봤다. 가사를 들으며 흥이 났던 나는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그 빈 거리를 돌아다닌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날을 이야기 할 때면 그 추웠던 새벽은 따듯한 기억의 온기로 가득 덥힌 밤이라고 말한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트레비 분수를 5번째 가던 날, (5번이나 의도해서 간 것은 아니다. 걷다 보니 그곳을 갔을 뿐) 평소 한국 발라드를 즐겨 듣지 않아 그 당시에 동행으로 있던 이들이 콧노랠 흥얼거려도 어떤 노래인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여전히 그 노래가 한국 길거리 어디선가 흘러 나오면 나는 자연스레 트레비 분수와 그때 걸었던 로마의 밤 거리가 기억이 난다.
비슷한 경우가 또 있다. 프라하 민박집에서 스탭으로 일할 때 같이 일하던 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한 곡만 재생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노래를 사랑하는 그의 모습이 좋아 굳이 플레이리스트를 바꾸지 않았다. 사랑 노래였는지 이별 노래였는지 목소리가 절절한 그 노래는 여행이 끝난 후 한국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갑자기 흘러나왔다. 익숙한 멜로디가 나를 집중하게 했고 프라하에 머물며 너무 많이 들은 탓에 어느정도 가사까지 숙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웃음을 자아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노래를 그토록 사랑했던 그 친구에게 안부 전화를 걸어 ‘너 노래가 나와!’ 라고 말하며 안부를 물을 수 있음이 감사했다. (여전히 이노래의 제목은 알지 못한다)
여행 중 헤어진 전 남자친구를 잊기 위해 신나는 노래만 들었던 스페인, 세비야에서는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세비야의 노란 가로등이 켜저있는 거리들을 그저 휘젓고 다녔다. 그 당시 헤어진 일이 썩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음악과 춤은 큰 힘이 되었고 지금은 회상하며 웃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웃음)
이런 진한 음악들은 어디선가 마주치면 그렇게 행복할 수 가 없다.
내 오래된 플레이리스트에서도, 세계 어느 거리에서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여행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