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기쁨 Oct 30. 2022

영국에서 만난 A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런던에 갔을 때 이야기다. 런던은 자주 왔던 곳이기에(이유는 간단하다 비행기가 가장 쌌다! ) 랜드마크보다는 소위 ‘힙’ 하다는 소호 주변을 돌아다니고 싶어 그 근처 호스텔에 부킹을 했다. 공항에 도착하고 창 너머로 비가 내리는 거리를 보며 런던에 도착함을 실감했다. 비 오는 거리를 좋아하지만 지금만큼은 예외이다. 40인치 케리어를 들고 숙소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산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래 우산이 무슨 소용이야 이곳은 런던인데.’ 


그렇기에 그냥 비를 맞기로 했다. 그렇게 공항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한번 갈아탄 다음에야 도착한 숙소. 오후 3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문을 열고 도착한 순간 방에서 매직기로 머리를 피고 있던 곱슬머리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hey”라고 말을 건넨 그녀. 앞머리가 있는 나로서는 비가 온 후 그 매직기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인사도 하기 전에 그 매직기를 이따 써도 되냐고 물었고 그녀는 웃으며 언제든지 쓰라고 했다. 그제야 인사도 이름도 건네지 않은 나 자신이 부끄러워 말을 걸었다. 


“ 미안, 인사도 못했네. 난 기쁨이야.” 

“ 괜찮아, 나는 Ashley야.”


미국에서 온 그녀는 3개월 동안 유럽여행을 했고, 마지막 나라인 아이슬란드에 가기 전 런던에 와있다고 했다. 나는 포르투갈에 가기 전에 들렸다고 했다. 그녀는 이곳이 소호기 때문에 맛있는 곳이 많을 거라 했고 같이 저녁을 먹자 했다. 나는 흔쾌히 좋다고 답했다. 샤워를 한 후 나갈 채비를 했다. 밖으로 나가기 전 준비를 하는 순간은 언제나 설렌다. 날이 좋지는 않지만 그렇게 칙칙한 런던이 진짜 런던을 온전히 느끼게 해 준다. 바깥의 날씨는 살짝 쌀쌀한 터라 회색 체크 난방에 검정 니트를 껴입었고 그녀는 몸에 붙는 검정 나시와 조금 두꺼워 보이는 카디건 걸쳤다. 그녀는 내추럴한 갈색의 머리를 고데기로 한껏 말았고 빨간색 립스틱을 발랐는데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밖으로 향했다. 구글 지도로 어떤 음식이 있는지 한번 스윽 보고는 낯선 거리를 눈에 닿는 데로 걸으며 계속 대화를 나눴다. 그녀의 어머니는 멕시코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 온 케이스였다. 그래서 그녀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동시에 하면서 매운 음식을 좋아했다. 걷다 보니 출출해져서 간 곳은 차이나 타운에 있는 베트남 음식점이었다. 일교차가 심했던 터라 컨디션이 안 좋다는 애슐리가 따듯한 수프를 좋아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녁 시간이었지만 기다림 없이 다행히 이층에 앉을 수 있었다. 런던까지 와서 차이나타운에 있는 온통 빨간색으로 되어있는 베트남 음식점에서 한국인과 미국인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깔깔 됐고 고민 없이 쌀국수 두 개를 주문했다. 우리의 얼굴보다 더 큰 그릇을 보고 또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쓸데없는 고민이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은 꽤나 유명한 맛집이었다) 배를 따듯하게 채우고 나니 추위나 감기 따위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걸었던 길을 돌아와 근처 라이브 펍으로 향했다. 우리는 그곳이 무슨 펍인지 아직도 알지 못하지만 테킬라 샷을 먹으며 컨디션이 좋아진다는 어떤 아이리쉬의 말에 테킬라를 두 샷이나 마셨고 영국답게 오아시스와 비틀스의 노래가 줄줄이 나왔고 모두가 한 목소리로 같이 노래를 불렀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리쉬의 말이 진실이었는지, 또 아니면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컨디션은 금방 좋아졌고 밤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고작 3일이지만, 많은 게 통했고 헤어질 때는 우리는 언젠가 어디서 볼 거라며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 후 우리는 동남아 어딘가에서 보기로 약속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모든 계획이 무산되고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내일 그녀가 온다. 2월의 겨울이 끝나기 전에. 



이전 14화 파리의 새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