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 심리독서모임

내 마음속 울고 있는 어린아이

by 나는고래

새벽 카페 만남 이후 심리독서모임 '심독'이 시작되었다. 미리 준비하지 않았지만 서로 독서모임 해볼까?라는 한마디에 그래 해보자라고 바로 모임이 결성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심독을 주선한 지앵 언니는 10년 전 아이들을 키우며 외롭고 우울한 마음을 내면아이 책을 통해 치유해 본 경험이 있었고, 지금 내가 딱 10년 전의 언니 모습처럼 아파 보였다고 했다. 언니의 경험을 나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했다. 나 역시 '나'를 잘 모르고 '엄마'로만 살며 우울한 시간을 지났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었기에 언니가 내민 손을 덥석 잡을 수 있었다.


우리는 존 브래드쇼 박사의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책을 1년간 같이 읽기로 했다. 한 달에 한 번, 책을 챕터별로 조금씩 나누어 정해진 분량을 읽고 언니의 집에서 모였다. 카페에 공지를 올려 함께 모임을 할 사람들을 모집했다. 첫 모임 때는 10여 명으로 시작했던 멤버가 시간이 지날수록 추려져서 5명이 남았다.


내면아이는 어린 시절의 주관적인 경험을 설명하는 용어로써 한 개인의 인생에서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존재다. 어린 시절 양육환경에서 받은 상처들을 치유하지 않고 안고 살기에 어른이 된 우리 마음속에 남아 살아가는 내내 영향을 미친다. 한 나라를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하듯이, '나'라는 한 사람을 알기 위해서도 역시 내가 살아온 나의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 그 과정이 내면아이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의 나를 속속들이 파헤쳐 나갔다. 그 1년의 과정은 길고도 험한 여정이었다. 내가 커오면서 미쳐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여러 부분들이 나에게 상처로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상처의 대부분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들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서로의 과거가 있는 그대로 드러났다. 살면서 누구에게도 꺼내보지 않았던, 꺼낼 수 없었던 민낯들을 우리는 거침없이 밖으로 꺼내 펼쳐 놓았다. 그 과정은 처참했다. 굳이 몰라서 될 일들을, 그냥 품고 살면 될 일들을 들춰내 나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게 옳은 일인가 각자 나름의 많은 고심들을 했을 것이다. 함께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상처만 더 키우고 포기할 게 뻔했다.


함께의 힘으로 엉금엉금 기어 어찌어찌 책을 끝까지 읽어내고야 말았다. 만날 때마다 울기만 하던 우리들은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함께 울고 웃어온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의 내면아이를 함께 키워내었다.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난 그 아이는 아직도 드문 드문 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의젓한 모습으로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산다.

- 당신이 옳다, 정혜신 -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서로의 '한 사람'이 되어주었다. 서로의 민망한 이야기들을 누구도 충조평판 하지 않았다. 말하기 힘들 때는 말하지 않아도 기다려주었고, 그 사람이 털어놓는 아픔을 묵묵히 귀담아 들어주기만 할 뿐. 진심을 다해 공감해주는 그 눈빛 만으로 충분했다. 그 눈빛이 우리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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