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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고래 May 20. 2024

귤 팔아서 책을 사다

나의 무자본 창업기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과 자영업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남편이 대표로 되어 있어 나의 공식적인 직업은 좋게 말하면 '전업주부'이고 현실적으로는 '무직'이었다. 나도 내 이름으로 다시 돈을 벌고 싶었다.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기도 해야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책'을 사고 싶었다. 남편이 뭐라고 하지는 않는데도 나 스스로 눈치가 보여 책을 사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 빌려보는 것도 좋지만, 읽다가 좋은 책은 밑줄도 긋고 싶어서 소장하고 싶었다.


  블로그 덕분에, 나에게도 드디어 공식적인 첫 직업이 생겼다. 블로그 강의에서 제주 특산품으로 만든 초콜릿 체험단에 신청했는데, 너무 맛있었다. 온라인 쇼핑몰인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해 보고 싶던 차에 팔고 싶은 물건이 생긴 것이다.


  바로 스마트스토어 개설을 해버렸다. 물건 하나만 팔 순 없으니 평소 제주에 살면서 좋아했던 간식도 판매해 보기로 했다. 마트에서 그 과자를 찾았고, 뒷면에 나와 있는 판매처 전화번호로 전화해서 사무실로 사장님을 만나러 미팅을 나갔다. 이제 막 온라인 쇼핑몰을 처음 시작하는 햇병아리인 나에게, 사장님은 흔쾌히 물건을 납품해 주셨다.


  초콜릿과 과자를 챙겨 제주 돌담과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내 쇼핑몰에 올렸다. 블로그와 인스타를 운영해 오고 있던 터라, 막연히 내 온라인 이웃들이 사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처음 스토어를 개설하고 물건을 조달하고 판매하는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해서 그런지 그동안 나를 지켜봐 왔던 이웃들이 정말 내 상품을 사주었다. 다행히도 첫 판매 개시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웃들이 사주는 건 한계가 있었다. 마치 오프라인에 내 가게를 개점했을 때, 지인들이 한번 방문해 주는 것과 같았다. 점점 매출은 떨어졌다.


  그즈음 김미경 유튜브 대학에서 만나 친해진 H 언니도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해 보고 싶다고 했다. 언니의 부모님은 제주 토박이로 귤과 한라봉 농사를 지으셨는데, 도매상이나 위탁판매장에 납품하면 제값을 받지 못해 온라인을 통해 소비자와 직거래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언니를 도와 나도 귤과 한라봉을 판매하게 되었다.


   언니의 부모님께서 정성스레 농사를 잘 지으신 탓에 신맛이 없고 달콤하게 정말 맛이 좋아서 반응이 좋았다. 한번 먹어본 사람들이 지인을 소개해 주고, 또 다른 가족에게 선물로도 보내고, 다음 연도 시즌이 되면 다시 사 먹어 주기도 했다.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며 드디어 내 통장으로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소소하지만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용돈이 생긴 것이었다. 스토어로 돈을 벌면서부터 나는 책을 사기 시작했다. 그동안 참았던 욕구를 맘껏 방출했던 것 같다. 집에 책 택배가 이틀이 멀다 하고 오는데도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책장에 책이 넘쳐나면서부터는 현실을 직시하고 중고 책으로 사다가, 이제는 밀리로 전자책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엄마들도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작은 돈이라도 내 힘으로 벌어서 쓸 수 있다면, 남편이 벌어 주는 돈과는 다르게 힘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아이도 키워야 하고, 살림도 해야 하고, 또 애써 가꿔놓은 경력은 단절되어 다시 살리기는 힘들고 막막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온라인 세상으로 눈을 돌려보자. 스마트스토어는 하루 종일 메여 있어야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편한 시간에 물건을 올리고 물건을 발송하면 된다. 내가 잠자는 동안에도 주문은 들어온다. 자고 일어났을 때 주문이 들어온 문자를 확인하면 그날 내내 기분이 좋다.


  스마트스토어를 개설하고 운영하는 데 투자금이 0원이었다. 그야말로 무자본 창업이다. 단, 얼마나 버느냐는 내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에 공부는 해야 한다. 스마트스토어 운영하다 물건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해도, 잃을 것이 없다.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은 고스란히 남는다. 세상에 완전한 공짜는 없는 법이다. 내 시간과 노력은 투자해야 한다. 이 정도 투자는 해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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