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없는 서울 집에도 손녀가 있는 타지에도 어김없이 정월대보름은 왔다.
이 날에 '내 더위 사가라' 하며 더위를 팔면 여름을 덥지 않게 보낼 수 있다며 할머니는 손녀에게 더위 팔기를 알려주었다. 여름이면 땀을 쏟아내는 손녀가 더위를 팔아서 땀 좀 덜 흘리고 덜 힘들게 여름을 보냈으면 했다. 손녀는 할머니에게 더위를 아무리 팔아봐도 여름이면 매일 같이 땀을 쏟아냈다.
손녀는 할머니가 정월대보름에 태어나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생일날마다 할머니는 맛깔나는 손맛으로 신나게 당신이 좋아하는 찰밥을 만들고 행복하게 나물을 무쳐냈다. 또 대보름 음식을 먹는 모든 이로부터 할머니가 축하를 받는다 생각하면 더 든든하겠다는 위안이 되었다. 해가 가고 어디에 누구와 있던 대보름날 만큼은 손녀가 할머니와의 추억을 고이 꺼내어보길 바란다는 할머니의 부탁이 담긴 날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집들은 화려한 오곡밥을 먹겠지만, 할머니는 팥만을 가득 넣은 찰밥을 더 좋아해서 대보름날에 식구들은 찰밥을 더 자주 먹었다. 꼭 생일이 아닌 날에도 할머니는 맵쌀밥 대신 찰밥을 종종 지었다. 할머니가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이니까 손녀는 생전 처음으로 이제야 찰밥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어릴 때는 팥이 싫었고 조금 컸을 때는 살찌니까 찰밥은 안 먹는다던 손녀는 이제 철이 들고 보름달이 떴다는 핑계로, 할머니의 생일을 핑계로 찰밥을 짓는다. 팥을 삶으면서도 몸이 쑤신다고 꿍얼거리는 할머니의 모습이지만 모락모락 꺼내보고 싶기도 했다. 한인마트에서 파는 비싼 마른 나물 대신 수입한 제주 무를 사다가 무나물을 볶고 가지나물과 호박 나물을 무쳤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나물 몇 가지는 눈감고도 만들 수 있는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손녀는 허탈해졌다. 달달 나물 볶는 양념 냄새랑 찰밥이 익어가는 냄새가 마치 할머니가 있는 서울 집에 와 있는 듯했다.
생일날 어김없이 모인 고모들을 포함한 일가의 왁자지껄한 축하를 할머니는 그저 무심히 바라봤었다. 당신 스스로 준비한 생일상으로 한 솥에 가득한 찰밥과 한 가득한 나물을 덤덤하게 먹이고 삼삼한 감주로 입가심을 시키고 그 맛깔난 음식을 미련 없이 한가득 들려 보냈다.
왁자지껄한 대가족 축하 소동이 끝나고 조촐한 다섯 가족끼리 할머니 생일을 본격적으로 축하했다. 손녀는 편지랑 바디로션, 기초 화장품, 마카롱 등을 선물했었다. 언젠가 돈을 넉넉하게 버는 번듯한 직장인이 되면 할머니에게 비싼 코트랑 명품백, 화장품 등등을 사주겠다고 꿈만 꾸고 실천은 못 했다. 할머니에게 손녀는 그 포부라도 전하고 싶었다. 일단 할머니에게 얘기를 해 두면 약속을 지키려고 더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겠다 싶었다만 결국은 지키지 못했다. 아무튼 할머니와 그 원대한 꿈이라도 나누는 건 번번이 실패했던 것으로 손녀는 기억한다.
“언제꺼정 미국에 살라냐? 평생 안 올라냐? 언제 또 집에 올라냐? 집에 와 갖고 시집가야지 안 쓰겄냐?”
감동이나 희망으로 운을 떼는 손녀의 마음과 달리 언제나 대화의 끝은 손녀의 앞날 걱정으로 마무리된다. 걱정 사이에 슬쩍슬쩍 보이는 할머니의 서운함에 대해서 손녀는 모른 척했었다. 팥을 삶는 동안 모락모락 참 못난 자신의 모습만 떠올리는 것 같아 괜한 일을 벌였나 싶다.
그날 꿈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언제나 그렇듯 할머니는 덤덤하게 부엌과 씨름 중이었다. 따끈한 밥을 손녀에게 차려주고 바삐 베란다에 널린 빨래를 걷어 온다. 여느 날처럼 할머니 밥을 배불리 먹었다. 놀러 오겠다는 친구의 전화에 집에 놀러 와서 우리 할머니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별일 없는 전화를 마치고 침대에 툭 떨어진 핸드폰을 따라 뛰어드려다가 괜히 할머니 있는 거실로 나갔다. 구부정하게 앉아서 널린 빨래를 걷어다가 접고 있는 할머니 옆으로 데구루루 굴러가 할머니 다리에 얼굴을 비빈다. 찰나의 지루함을 느끼고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지금은 온전히 할머니 옆에 비비적거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꼭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손녀는 엎드린 채로 할머니의 말캉한 뱃살을 꼭 끌어안았다.
평온하고 평화로웠었다. 꿈이라고 여길만한 틈이 없었는데도 허무하게 깨어나버렸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적막한 침대에서 일어나 어제와 같이 출근을 해야 하는 평범한 아침일 뿐이다. 허탈한 손녀는 오랜만에 할머니를 만났다는 걸로 그날의 아침을 위로했다.
더위도 많이 타고 답답한 걸 못 견뎌하는 할머니는 다른 손주들을 포함하여 타인과의 스킨십에 진저리 냈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손녀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에게 부대껴왔다. 천둥번개가 치는 여름 소나기가 오는 날이면 부엌에서 일하는 할머니 치마 밑으로 숨어들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겨울 요의 겉감을 빨아다가 꼬실꼬실하게 말려서 안감에 덧대어 꿰매는 일을 할 때도 꼬부랑하게 집중하는 할머니 몸배바지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는 걸 손녀는 서슴지 않았다. 어쩐지 할머니는 손녀의 비비적거림을 뿌리쳐 본 일이 없었다.
겁이 많은 손녀는 시험기간이 끝나면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빌려온 비디오를 우르르 몰려서 보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잔뜩 겁에 질려서 집에 오더라도 어둠 속에서 잠을 자는 게 무섭지 않았다. 할머니로부터 독립해서 혼자 차지할 수 있는 방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날이면 꼭 할머니 찬스를 썼다. 베개를 들고 이불을 질질 끌고 쪼르르 할머니 방으로 건너가면 '떡대는 소도 잡겄다. 뭣이 무섭다냐' 하면서도 할머니는 손녀를 내치지 않았다.
할머니가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들겨줬던 날들도, 할머니 무릎에 폭 들어가 앉았던 날들도, 할머니와 얼굴을 비비던 날들도, 검버섯이 오돌토돌한 할머니의 손등이 신기해서 조몰락거렸던 날들도, 할머니 옆구리에 붙어서 안정감을 느끼며 잠들었던 날들도 너무나 생생하다. 그런 할머니를 꺼내어 보는 대보름날이 손녀는 참 공허하다. 누군가에게 유난히 기대고 싶은 날에, 꼬깃꼬깃 접어둔 그 촉감은 손녀가 꺼내어 추억할 수 있는 영원한 할머니의 선물이라 생각한다.
어느 날 만날 손녀의 손녀에게도 할머니의 그 감촉을 전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