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집을 꿈꾸다
우리 동네, 어느 공부방 이야기 4.
남자는 온화했고 말투는 기품 있었기에 나는 내가 없을 때 남자에게 빨간 야구방망이로 맞았다는 아이들의 말을 곧이듣진 않았다. 대신 이 공간에서 절대 체벌은 안된다고 부드럽게 항의만 했다.
체벌 대신 만다라 그리기와 108배를 시켰다.
당시 매달 교육운영비로 300만 원, 급식비로 270만 원을 지원받았는데, 남자는 생협에서 유기농 식품을 사다 먹인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식단이 단출했다. 찌개에 반찬 한 가지!
나는 급식 할머니께 부탁을 드렸다.
복 짓는다 생각하고 5가지 반찬을 매일 만들어 달라 부탁드렸다. 아이들에게 저녁 한 끼라도 융성한 밥상을 차려주자고 부탁드렸더니, 마음씨 착한 급식 할머니도 힘들지만 해보겠다고 하셨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아이들 밥을 지었다.
그건 내 가족에게도 하지 않는 봉사였다.
할머니 월급이 토요일까지 일해서 30만 원이었는데, 할머니는 차비를 아끼기 위해 왕복 10킬로 거리를 걸어 다니셨다. 나는 남자에게 할머니 월급을 40만 원으로 올리자고 건의했다.
남자는 30만 원도 많은 편이라며 반대했지만 어떻게든 후원금을 만들어 할머니 월급을 충당해보겠다고 설득한 끝에 급식 할머니 월급이 인상되었다.
남편은 매일 물을 날랐다. 여름이라 아이들이 물을 찾았지만 끓여놓은 물이 부족해서 아이들 간에 불필요한 싸움이나 언쟁이 오가는 경우가 생기자, 사비로 중고 정수기를 구해와서 매일 20리터들이 생수통을 날라야 했다.
여름이 다가오자 지역아동센터 평가기간이 시작되었다!
공부방 부부는 평가로 등급을 매기는 것에 반대해서 그간 평가를 거부해왔다고 했다. 하지만 평가를 거부하면 지원금 일체를 끊겠다는 정부 방침에 급작스럽게 평가를 받기로 마음을 바꿨다.
평가에 필요한 서류는 30여 종에 달했고, 남자는 문서작성에 약했다. 평가에서 1등급을 받으면 지원금이 매달 30~40만 원 더 나온다고 했다.
나는 지원금을 받고 싶었다. 그 돈이면 아이들이 "비폭력 대화"나 "예술치료"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평가준비에 매달렸다.
내 남편도 따라서 평가준비를 했다.
밤낮없이 없는 서류를 만들어냈다.
문서란,
형식적으로 사용하면 업무부담이 된다. 하지만 평가를 위해 가짜로 뭔가 만들고 싶진 않았다.
상담일지, 평가, 관찰지 등등
아이들에게 교육적 의미가 있는 것들은 우리에게 맞는 걸로 재구성하고,
불필요하고 형식적인 것들은 생략하고, 부족한 것들은 첨가하면서 평가가 겉치레가 되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틀에 걸쳐 평가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