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빛찬란 Sep 28. 2021

모두의 집을 꿈꾸다

우리 동네, 어느 공부방 이야기 6.

남자는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였다. 소통도 어려웠다. 남자만 믿다간 일이 꼬이거나 낭패를 보는 일이 빈번하게 생겼다.

 

#1 남자는 문화공연을 보러 가자고 했다.

남자는 중앙박물관이기 때문에 사전답사가 필요 없다고 했다. 도시락도 필요 없다고 했다. 스무 명 아이들을 인솔해 움직일 때 "만약"을 대비하는 일은 없었다.

박물관은 대혼잡이었다. 외부 식당까지는 너무 멀었다. 공연시간은 임박했다. 아이들은 덥고, 배고프고, 목마르다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결국 관계자에게 사정해서 다음 공연으로 관람을 연기하고 아이들 먹을 걸 구하느라 동분서주!


관계자는 "공연 당일 혼잡하니까 점심을 해결하고 오든지 도시락을 싸오라고 남자 선생님께 그렇게 신신당부를 드렸건만"하며 쏘아붙였다.


#2 남자는 갯벌 체험을 가자고 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3박 4일 양평으로 떠난 캠프! 무슨 연유에서인지 남자는 강화도 갯벌체험을 다녀오자고 했다. 양평에서 인천까지 무슨 수로!


하지만 남자는 아이들이 갯벌에서 노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설명했다. 나는 처음엔 양평-인천-송도 당일 갯벌체험이 분명 아이들을 피곤하게 할 거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갯벌에서 즐겁게 놀 아이들을 생각해서 남자의 뜻을 받아들였다.


이동은 남편의 도움을 구했다. 남편은 이른 아침 양평으로 와서 인천까지 우리를 태워주었다. 모두들 수영복과 갈아입을 옷, 물놀이 용품을 가득 채워 갯벌로 갔다.


하지만 갯벌에 들어가지 못한다 했다. 그냥 망원경으로 갯벌을 보는 게 전부라고 했다. 게도 망원경으로 관찰하라고 했다. 양평에서, 아이들 데리고 짐을 싸서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아이들보다 더 화가 났다. 관계자에게 따지기 시작하자 이번에도 "분명 남자 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수차례나 갯벌에 들어가지 않고 망원경으로 관찰한다고 동의를 구했는데 왜 이러시는 겁니까?"였다.


#3 남자는 옥상에 텃밭을 만들자고 했다.

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산 조망권에 있는 건물에 옥상 녹화 사업을 지원한다 했다. 우리는 옥상 평수가 작아서 해당사항이 없었다. 남자는 옥상 텃밭은 자기가 꿈꾸던 일이라며 추진해보자고 했다.

공부방 건물은 노후되어 장마철에는 빗물이 여기저기 천장에서 떨어져 양동이로 받아가며 생활해야 했다. 옥상에 대한 방수공사를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지원 사업이었다.


공부방이 있던 다세대 주택은 건물주가 남자의 아버지였다. 옥상을 텃밭과 아이들 쉼터로 만들려면 건물주의 동의가 필요했다. 남자는 자기가 아버지를 설득시킬 테니 추진하라고 했다.

우린 여러 조건이 불리했다. 망우동에서 남산까지 거리가 멀어 선정되기 힘든 조건이었다.


운이 좋게도 신청단체가 없었던 건지 우리가 선정되었다. 단, 조건은 사업비의 절반은 자부담!

총 사업비 2000만 원 중에 1000만 원을 다시 후원받아야 했다. 남편과 내 지인, 지역사회에 기반한 기업 등에게 후원을 요청할 계획이었다.


근데 남편이 내게 그 부부를 신뢰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전 05화 모두의 집을 꿈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