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하고 이런 말을 꽤 자주 했다. 월급이 얼마 이상이 되어야 이런 생각을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월급은 정말 많지 않았다. 7급이 된 이제야 230만 원 정도 받는데 그 안에서 부모님 용돈, 차비와 식비, 품위 유지비용(옷, 커피 등등)을 제하고 나면 정말 매번 현타가 왔다.
아이가 없을 때는 내가 버는 만큼 고스란히 저축을 할 수 있어서 적은 월급이어도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된다는생각을 했는데 아이 돌봄비용까지더해진 지금은 일을 해도 저축이 늘지 않았다.게다가 일하느라 아이들의 공부와 생활습관도 세심하게 챙겨줄 수 없게 되니이래저래 남는 게 없다는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당부가 무색하게 출퇴근길 지하철은 사람으로 가득 찼고 그래서 더욱 짜증스러웠던 어느 날, 진지하게 그만두는 건 어떨지 생각해 봤다.겨우 7-80만 원(이것저것을 제하고 남는 금액)을 위해 매일같이 새벽에 나와사람이 꽉 찬 지하철에서 나의 체력을버려야 하는 건지,간신히 도착한직장에서그나마 남아있는 정신까지갈아 넣어야하는 건지명확히 답을 내고 싶었다.
직장 생활 8년, 휴직을 6년 했던 나는 집에 있다는 의미가 그저 편안히 쉬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멀쩡했던 자존감이 무너지기도 하고 열등의식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소비까지제한됐다.
반면, 복직을 한 이후에는 예쁜 쓰레기,ㅆㅂ비용이라는 이름으로 지출 후 금방 후회할지언정 그때그때 지친 마음을 돌보는 소비가 가능했다. 겨우 얼마니, 어쩌니 해도 집에 있을 땐 네이버 애드포스트 이외에 한 푼도 벌지 못하다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 덕에 사고 싶은 것을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이번 달엔 향수를 2개나 샀는데 거기에 룸 스프레이 2개를 추가했다. 2개의 향 중 어떤 걸 고를까 고민하는 대신 2개 다 주문하는 Flex.! 이런 것들이 '겨우' 7-80만 원이라고 할 수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물었다.
매월 100만 원 정도의 여윳돈만 생긴다면 그만 둘 이유가 충분했는데, 그 전제를 충족시키기가 어렵다. 매월 100만 원 정도의 여윳돈은 절대 쉽게 생길 수 없었고 다시 예전처럼 소비를 줄이며 쪼그라드는 마음을 관리할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출퇴근길이 힘들어서, 남는 돈이 쥐꼬리만 해서가 아닌 더 중요한 가치를 이루기 위해 퇴사를 선택하고 싶었다. 출퇴근길의 짜증을 가라앉히며 차분히 생각해 보니 아직은 이 직장에서 더 배울 것이 있었다. 나의 뿌리가 깊이 뻗어 갈 수 있도록 힘이 더해지는 압력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내가 그토록 받기 싫어했던 스트레스를 통해.
우리는 능숙한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재능과 능숙함은 다르고, 후자는 무조건 꾸역꾸역의 나날이 필요하다. 버틴다고 뭐가 되지는 않지만, 그런 보장은 없지만, 재미없는 걸 참아내는 시간 없이는 재미가 오지 않는다. [출근길의 주문, 이다혜]
직장 내에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일, 출퇴근길에서 드는 허탈한 마음 등을 '퇴사'라는 만능카드로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만능카드로 여겼던 '퇴사'가 사실은 만능이 아님을 알고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내 마음의 만족을 따르는 일과 경제적 가치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나의 역량과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다. 이 직장이 내 인생의 목표점이 아니라는 점에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어쩌면 이곳에서 힘을 비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꾸역꾸역의 나날'을 통해 결핍과 불안함을 견뎌내는 힘, 기대고 싶은 마음을 나 혼자 해결하는 힘 말이다.
가정에서 나의 역할이 건강하게 자리 잡을 때까지 혹은 다른 방향의 에너지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때까지, 직장에서 버티는 힘을 길러보자. 직장은 버티는 힘을 배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혼자만 있을 땐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을 누군가를 위해 배려하고, 서로 조금씩 눈치도 보면서 마음의 평수를 키워 나가는 곳. 나에 대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을 해도 본질이 아니라면 허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며, 내향적인 내 성향에 반하는 일도 주춤거리지 않는 자세를 가르치는 곳. 내 월급에 경제적 가치 외에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자 직장 생활이 배움의 장으로서 꽤 괜찮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버티는 힘은, 그러니까 사회생활의 필요 근육은 하기 싫은 일을 견뎌내며 길러지는 법 아닌가? 그러다 간간히 내 적성에 맞는 일을 만나면 조금 재밌다 싶은 마음으로 일하며 인정도 받고.
그래, 매월 받는 내 월급에는 좋아하는 향기를 킁킁대며 맡을 수 있는 호사스러운 취향의 존중과 집안에 가만히 있을 땐 영 떠오르지 않던 글감뿐만 아니라,보너스로 '버티는 힘'까지제공하고 있었다. 게다가 '버티는 힘'은 직장생활만 버티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경제적 가치의 균형을 이루지 못해 삐걱대는 내 모습까지 견디게 해 준다는 점에서 월급만큼 매력적이다.
결국 월급과 보너스다.
의미부여가 꼭 필요한 나 같은 사람이 기어이 월급에 포함된 경제적 가치 이외의 것들을 찾아내도 결론은 크게 월급과 보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