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아한밍블 Jul 31. 2021

모닝커피는 혼자 마시고 싶은데요?

직장이라는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꼭 필요한,

“출근하자마자 일하는 거야? 차 한잔 마시고 시작하자!”     


아침 8시 40분. 공식적인 업무 시작시간이 9시라면 20분의 여유가 있다. 할 일이 많은 사람은 시간에 관계없이 일을 시작하고 이제 막 출근해 가방을 내려놓는 사람도 있는, 각자가 직장이라는 다른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나름의 이유로 분주한 시간에 티타임이 소집된다. 그야말로 소집되는 것.

    

보통 8시 20분이면 사무실에 도착한다. 직장이 멀 때나 가까울 때나 8시 20분에 도착하도록 준비를 했는데 단 20분이라도 내 시간을 갖기 위해 그랬다. 그야말로 나만의 tea time을 갖고 싶었다. 차 한잔을 마주하고 오늘의 나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시간, 집에서의 나를 잊고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적절한 기능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간,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까만 커피를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조금 서둘러 나왔다. 그랬는데 자꾸 차를 같이 마시잔다. 8시 40분에 도착하면 내 의지가 아닌 상사의 의지에 맞추어 하루가 시작됐다. 모두 함께 마시는 티타임은 업무의 시작이나 다름없었다. 아 싫어 싫어 이렇게 하루를 시작할 순 없어서, 진정한 나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20분 더 서둘러 8시 20분에 도착했다. 도착하면 음악 한 곡을 더 듣기도 하고 책 한 두 장이라도 더 봤다. 솔직히 그런다고 크게 좋아지는 건 없다. 음악 한 곡을 들으면 다음 곡도 듣고 싶고 책을 꺼내면 책장을 덮기가 아쉽다. 그런데도 그리하는 것은 직장이라는 삭막한 세계에 나의 색을 슬며시 더하기 위해서다. ‘이곳도 내 영역이야. 잠시지만 여기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하고. 향기를 남긴다. 

   


“저는 차 마셨어요.”     


조직에 문화에 99% 순응하는 편이고 상사의 말에 되도록 “YES”라고 말하는 나도 가끔 저런 말을 했다. 상사의 의도를 몰라서, 정말 차를 마셨다는 사실 전달을 위해 그랬던 적도 있고 업무가 바빠서 그랬던 때도 있다. 때로는 너무 길게 이어지는 티타임에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이 싫어서 그런 나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그랬던 적도 있다. 무엇보다 내 시간을 내가 주도하고 싶었다. 업무를 위한 이야기는 회의시간에 하면 되고 회의가 아니더라도 상사는 수시로 업무지시를 위해 나를 불러댔는데 굳이 티타임까지 내주고 싶지 않다는 반항의 마음도 있었다. 소심한 반항이지만 내게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커피 한 잔 하지?”

아, 이 말이 정말 싫다. 우리 과에는 정말 커피를 안 마시는 분이 있다. 분명 그분은 나보다 이 말을 더더 싫어하시겠지? 아침 업무 시작 전 한 번, 점심 먹고 한 번 더 들리는 문장에 구내식당에서 3,500원짜리 밥을 먹고 5천 원짜리 커피를 사러 간다. 직장인의 영혼, 노란 봉지의 믹스커피나 카누 커피를 마시기도 하지만 요즘처럼 더운 날엔 아이스가 간절하다. 칸막이가 쳐진 테이블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보다 뭐라도 사러 왔다 갔다 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 자진해서 카드를 갖고 나간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내 속마음은 그렇다. 내가 착해서 사러 가는 게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해 손을 든다. “제가 사 올게요!”하고.      


함께 커피를 마시며 하루 종일 함께 일하는 동료의 이야기를 듣는 것, 얼굴을 마주하는 것, 같이 웃는 것은 정말 업무의 연장일 수도 있다. 직장의 분위기가 좋아야 업무의 효율도 생기는 법이니까. 어떤 날은 그렇게 함께 하는 시간 덕에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일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 점심 먹고 가지는 티 타임은 보통 좋은 마음이 된다. 그런데 모닝커피만은... 아침의 티타임만큼은 지키고 싶다.


"저는 집에서 직장이라는 세계에 올 때 꼭 거쳐야 하는 루틴이 있거든요. 혼자 조용히 변신할 때 필요한 약이 바로 커피라서요. 누가 보면 안돼요. 저 혼자 치러야 하는 중요한 의식이거든요. 모닝커피는 혼자 마시고 싶어요."

이전 01화 꿈꾸던 출근길, 그때 미처 누리지 못했던 것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