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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Jun 16. 2024

프롤로그

미국이 밥 안주드나

2022년 5월, 

집집마다 마스크를 잔뜩 쟁여놓게 했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세가 한풀 꺾였다. 한국 입국 시 필요한 방역규제가 완화되자마자. 미국으로 출국 이후 약 3년 만에 인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미국까지도 나를 쫓아온 세월 때문에 미국 갈 때는 멀쩡했던 무릎에서 지릿지릿 소리가 난다. 무릎을 문질문질, 퉁퉁 치다가 자다가, 또 지릿지릿하는 사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코로나 백신주사 3+1번을 맞고 받은, 백신기록증을 신분증처럼 들고, 비밀요원처럼 마스크로 온 얼굴을 가리고 체온 감지 기계와 몰래 눈싸움을 하고, QR코드로 방문기간 동안 머무는 곳 등록을 하고 있으려니 여기가 디스토피아가 배경인 영화 속인가 싶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3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아가는 길은 MBTI의 T스럽고 J스러웠다. 한국과의 3년 만의 상봉은 좀 F스럽고 P스러울 거라 기대했는데.


공항 도착시간인 오전 5시에 맞춰 부모님과 동생이 마중 나오기로 했다. 오전 5시까지 공항에 오시려면 집에서 4시엔 출발해야 하고, 그러려면 적어도 3시 30분에는 일어나셔야 하고, 그럼 전날 저녁엔 일찍 주무셔야 하니, 일이 크다. 오시지 말라고 할까? 하지만 오시지 말라고 한다고 오냐 하실 것 같지 않아서, "조심히 오이소."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한 달간 혼자 집에 남겨진 남편에게도 '잘 도착했어. 밥 굶지 말고."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가방을 찾고 입국장으로 나갔다.

드르륵, 입국장 문이 열리고,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간절히 보고 싶던 이가 나올 때 배경으로 나오던 음악을 흥얼거렸다. 나에게만 들리는 그 음악소리에 걸음의 속도를 맞추고 있던 그때, 바로 전방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순간, 방금까지 입국 절차를 밟느라 붙들고 있었던 긴장줄이 탁 풀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부모님의 성성한 백발이었다. 미국에서도 한 달에 한번 영상통화를 통해 우리는 만났고, 그래서 부모님의 머리가 백발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아왔지만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더 많이 속상했다. "강경화장관도 백발인데 멋있고, 그 머시기도 염색 안한다더라. 백발도 멋있어."라고 세월 야속해하는 부모님을 줄곧 위로해 드렸었기기에 심장 무너지는 소리를 숨기고,

"이야~ 백발 실제로 보니까 더 멋지시네." 그랬다. 흐르는 눈물을 눈 뒤로 다시 꿀꺽 삼키려고 애쓰며.


눈가가 발그스레한 아빠가 아무 말씀이 없으신 동안, 우리 엄마.

"니 와이래 눈이 퀭하노.

주꾸지비 사촌처럼 와이래 얼굴에 살이 없노.

미국이 밥 안주드. 

피부는 와이래 푸석푸석하노.

로션 안바르나.

아니고마."

폭신폭신한 악플을, 속사포처럼, 실명으로 내 면전에 쏘기 시작하셨다.

미국서 곧잘 챙겨보는 동양계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이 생각났다. 자녀에 대해 매우 솔직하고, 매우 비판적인 동양엄마들을 해학적으로 묘사하는, 그들이 말하는 그 엄마가 내 눈앞에 있다.

당신들이 말하는 현실모녀가 여기 있다!


너무 늦기 전에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 함께하는 시간을 갖겠다며 왔고, 한  정도를 꼬박 친정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이다. 잘할 수 있을까? 나와 엄마는 둘 다 무뚝뚝해서 내가 어릴 때부터도 잘 부딪히고 퉁퉁거리는 사이였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다고, 나이가 들었다고 달라질 수 있을까?


사춘기 페르소나에게 나대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해 본다. 너 마흔 중반이야. 잊지 마.

갱년기 페르소나에게도 나대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해 본다. 갱년기 대선배가 여기 계셔. 잊지 마.


인천공항에서 친정집으로 가는 길, 좀 전에 입국장에서 터졌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망가져도 스스로 다시 모양을 찾아가는 기억합금 같은 무뚝뚝 DNA가 잃었던 제 모습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차창을 열자 간밤에 내린 비로 아침공기싱그럽다. 그날부터 한 달 동안 딸은 효도하겠다고, 엄마는 자식 챙겨 먹이겠다는 동상이몽의 목표로 각자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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