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nA Jun 18. 2024

시간을 품은 동네

주차는 기똥차데이.

도착이다.


재건축 현수막이 둘러싼, 동네 어귀를 들어서니,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 된다. 한국을 떠나온 건 3년이지만, 이 동네를 떠나온 건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이기 때문이다. 누가 내 동생 건드렸냐당장 나오라고 소리치던, 실제로는 진짜 나올까 봐 속으로 떨던 놀이터도 보이고, 어느 날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어서 맴맴 돌던 아파트 뒷길도 보이고, 해마다 늦봄이 되면 싱싱한 생물 멍게 팔던 트럭이 서 있던 곳도 보인다. 업고 고 싶던 나의 선재가 살던 아파트도 보인다. 그때는 선명한 3원색 채도의 동네 풍경빛바랜 사진같이 변해있다. 


빡빡하게 주차된 차들 사이로 곡예하듯 단지 안으로 들어서자, 동생이 잡았던 운전대를 아빠가 받아 쥐신다. 오랫동안 주차공간 부족이라는 고질적 문제를 갖고 있는 이 동네 주차는 우리 아빠가 최고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가서야 늦은 면허를 땄지만, 주차하다 옆차 내차 다 긁을까봐 운전을 못하고 사는,  작은 나에게 이 순간, 아빠 어깨가 마동석 어깨가 된다.


"야야, 아빠 다른 건 맘에 안 들어도 주차는 기똥차데이."


빽미러를 보니 칭찬인지 흉보는 건지 모를 엄마의 말씀에 빙긋 웃는 아빠가 보였다. 다닥다닥 붙은 차와 차 사이로 한치 삐딱함 없이 차를 세우시는 아빠의 현란한 손놀림. 아빠 여전하셨다.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올라오는 건 공항 도착 이후부터 내가 계속 부모님이 예전같은 건강을 챙기고 계신지 테스트하고 있기 때문일거다.


집으로 올라갔다. 현관문 앞에서 문을 여시는 아빠 뒤에 서서 상상했.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현관문 앞에서 주먹을 꽉 쥐고, 눈을 감았다 뜨면, 저 안에 옛날의 우리가 있는 상상. 혼자 심장이 몰캉거려지는 상상하는 사이 문이 열렸고, 현관문만 한 가방을 안으로 들여놓았다. 좀 전의 상상처럼 옛날의 우리는 안에 없었지만 나머지는 그대로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동생이 2학년 때, 당시 이 집을 분양받아 입주한 후, 부모님은 이 집을 한 번도 떠나신 적이 없다. 어느 둘레길에서 봤던, 수 백 년 된 버드나무처럼, 지난 세월 우리를 다 보아온 집. 우리 가족이 간직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모두 알고 있는 집이다. 그런데, 왜인지 모든 것들이 전보다 작고 천장도 낮게 느껴졌다. 이 집으로 이사했던 첫날, 그전까지는 좌식식사하던 우리에게 신분상승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준  식탁도, 내 방이 생겼다고 행복해하며 걸어 잠그던 방문도, 물빨래해서 확 줄어버린 스웨터처럼 작아진 느낌이었다. 그사이 내가 거인이 된 건 아니니까, 추측컨데, 지난 3년간 높은 쓸데없이 큰 미국집들의 규모에 익숙해져서 일지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이 정상크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착시, 고맙다. 참으로 버릴 것 없는, 몸이 하는 짓.


부모님이 마련해 두신 자리가방을 들여놓고, 손을 씻으려고 화장실에 들어가니, 샤방샤방한 새 변기와 그렇지 못한 욕조가 보인다. 언제 될지 모르는 재건축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부분만 하나씩 고쳐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 나는 이 화장실에서 '유치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 탈무드, 배꼽, 동냥그릇 같은 책들을 수십 번 읽었었다. 언젠가 친구들에게 빌려주고는 돌려받지 못해 지금은 그 책들이 수중에 없고, 얼마 전에 검색을 통해 로버트 풀검의 '유치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만 다시 구입했다. 당연히 새 로버트 풀검은 내가 그때 화장실에서 한 일을 알지 못한다.


손을 씻고 나오니, 표고버섯, 당근, 감자, 으깨진 양파가 고명으로 가득 얹어진 갈비가 오늘의 특식으로 식탁 위에 앉아있다. 그 새벽에 공항길을 나서면서도 엄마는 내가 도착하면 배고플 거라고 모든 음식을 비상대기상태로 냉장고에 정렬해 두셨던거다. 특식인 갈비를 중심으로 착착 2열 횡대로 식탁에 차려지는 반찬들. 흠결 없는 메추리알 장조림, 같은 크기로 정갈하게 썰어진 파프리카, 호박잎과 걸쭉한 된장국, 마늘 양파 장아찌, 황태꽈리고추 무침, 오징어 숙회들이 주변으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배고프제, 니? 밥부터 일단 묵지 뭐. 오늘 다 일찍 설쳐서 배고프니까."


의 '효도' 프로젝트는 엄마에게 이렇게 선수를 빼앗겼다. 첫날에.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