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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Aug 14. 2022

첫 번째 만남에 술이 땡긴다면

오뎅 바 사장의 어떤 날 

 오후 5시 20분. 남자는 먼저 와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여자일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오뎅바에는 대부분 커플이 방문한다. 바 건너편 조용한 구석 자리를 예약한 남자는 예약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 메뉴판을 둘러보며 무엇을 시킬까 고민한다. 그러는 동시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걸 보니, 여자의 연락을 기다리는 듯하다.


 여자는 5분 늦었다. 다소 상기된 얼굴로 들어와 두리번거리더니 전화를 받고 있던 남자의 테이블로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네, 반가워요. 추운데 오시느라 힘드셨죠." 

"아닙니다. 지하철역에서 멀지 않아서 괜찮았어요." 


 으레 예의상 하는 말들을 서로 뱉어내고, 음식을 주문한다. 남자는 미리 봐 둔 모둠회, 오뎅을 시키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뭐든 잘 먹는 여자는 마침 배가 고팠다며 좋다고 대답한다. 


"혹시.. 술도 한잔 하실래요?" 


 남자는 조심스레 묻는다. 여자가 행여 술을 잘 못 마시거나 첫 만남에 술을 제안한 것에 대하여 불편하게 생각할까 걱정하면서. 


"네, 가볍게 한 잔 좋습니다!" 


 모듬 회와 오뎅, 그리고 시원한 하이볼이 테이블에 놓여졌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 지, 웃음과 끄덕거림이 멈추질 않는다. 유리잔 표면의 땀이 송골송골 맺혀가고, 그들의 대화도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는 듯하다. 멈칫거리며 여자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책 세 권이다. 쑥스러워하며 남자에게 건네자, 남자는 싸인을 요청한다. 아마 여자는 작가인가 보다. 그런 호응이 나쁘지 않은 여자는 담담하게 책에 싸인해 준다. 


 유리잔 표면에 늘어가는 물방울의 양은 무시한 채, 남녀는 한잔의 하이볼을 홀짝홀짝 아껴 마신다. 한잔 씩 더 시키기엔 문 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요일 밤일뿐더러, 코로나로 인해 영업시간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12시에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다. 11시가 되자, 자리를 채웠던 손님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도 남녀는 여전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하고 있다. 비교적 멀리서 사는 듯 보이는 여자가 시계를 보더니, 


"앗,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됬네요.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어요." 라고 말한다. 아쉬운 마음을 숨길 수 없는 남자는 "네, 그러시죠."라고 대답하며 남지도 않은 하이볼을 입에 털어낸다. 


 술집을 운영하며 소개팅 커플을 많이 목격한다. 힘든 영업시간 중, 가장 꿀잼 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가 마음에 들면 술을 주문한다. 물론, 나의 가게가 오뎅바이기 때문에, 예의상 주문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요즘 남자들은 결괏값이 분명하지 않은 게임에 투자를 주저하기 마련이다. 


 오늘의 소개팅 주인공 남자는 5시간 동안 하이볼 한 잔으론 분명 모자랐을 텐데, 그 이상이 된다면 그의 마음을 들킬 것이 분명하므로 티 내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보였다. 아마 12시 영업 제한이 없었더라면 남자는 분명 한 잔, 두 잔 더 시키다 본인의 집에 데려가... 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소개팅 커플을 직관하는 것도 꿀잼이지만 나의 가게를 나서며, 어디로 갈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상상하는 것 또한 즐겁게 근무하는 나의 습관이다. 


 첫 만남에 술이 땡긴다면, 그건 좀 더 적극적인 표현을 하기 위한 준비 운동 같은 것. 가게를 나서는 소개팅을 막 마친 남녀를 바라보며, 그들이 어디로 향할지 고개를 내밀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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