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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Aug 14. 2022

두 번째 만남에 노래방이 땡긴다면

노래방 사장의 어떤 날

 금요일 저녁 9시, 조금은 어색해 보이는 남녀가 내가 운영하는 노래방에 왔다. 그 시각 이미 많은 사람들이 큰 방을 차지하고 있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작은 방을 배정해주었다. 


 여자가 결제하는 것을 보니, 아마 이 남녀는 퇴근 후에 저녁을 먹고 온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곱창 냄새가 남녀의 옷에 배어 있다. 곱창이라면 소주도 한잔 했겠지. 카드를 건네주는 여자의 발그레한 얼굴을 확인한다.

 

 내가 안내하는 방으로 남녀는 들어갔다. 맥주 두 캔, 새우깡을 서빙하며 그들이 앉은 자리를 확인했다. 2평 남짓한 사이즈의 방.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ㄱ자로 남녀는 앉았다. 여자는 모니터 오른쪽에, 남자는 모니터 정면 쪽에. 남자는 노래가 무지 고팠는지 내가 맥주를 서빙하기도 전에 이미 노래를 시작했다.


 남자의 첫 곡은 굉장히 힙한 요즘 힙합 노래인 것 같다. 가수는 모르겠다. 반주는 힙하게 흘러가는데, 남자가 버겁게 따라가는 가사는 힙하지 못하다. 남자는 헐떡대며 문장을 읇조리고 있다. 


“좋은 시간 되세요~” 


 최대한 어미를 끌어 말하며 시간을 확보하고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구경하다 아쉽게도 그 방에서 나왔다. 

총 10개의 방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노래들이 섞여 소음을 만든다. 때문에 보통 손님이 몰리는 금요일 밤에서 토요일 밤 알바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그 시간엔 주인인 내가 손님을 맞이한다. 노래방 일을 오래 하면서 이 소음에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것은 바로~!! 


 한 방의 노래에만 집중하는 것.


 이 고도의 기술은 마치 명상을 하는 것과 같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한 방의 노래에 주의를 기울인다. 주의력이 흐트러지면 다른 방의 노래가 유입되지만, 다시 긴 호흡으로 내가 정한 방의 소리에 집중한다.  


 오늘 집중할 방은 아까 그 어색한 남녀의 방이다. 노래방 영업 10년 차인 나의 감으로 보아, 이 남녀는 약 2~3번 정도 만난 썸남썸녀이다. 힙한 힙합곡 다음으로는 90년대~2000년대 힙합들이 줄줄이 흘러나온다. 드렁큰 타이거, 다이나믹 듀오, 에픽하이, 빈지노. 남녀가 번갈아 가며 랩을 읇조린다. 선곡을 보아하니 그들은 아마도 그 시절 고등학생~대학생이었을 1980년대 생들일 가능성이 높다. 아까 그 힙한 요즘 힙합곡보다 그 시절 힙합곡을 더 잘 부른다. 나 역시 1980년대생이라 자연스레 함께 따라 불렀다. 


 쉴 틈 없이 랩을 쏟아내더니, 잠시 쉬어가는 타임인지 처절한 발라드로 장르가 바뀌었다. 제발 임재범의 어찌합니까~~만은 부르지 말았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귀를 기울였다. 다행이다. 남자의 취향은 그쪽은 아닌 듯하다. 윤상, 토이, 윤종신 라인으로 대여섯 곡을 부르다 갑자기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다른 방들의 노래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그 방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라? 남녀는 무얼 하길래 조용해졌단 말인가? 홍홍홍..


 잠시 후, 노래방을 나서는 남녀를 보며 나는 그들이 어디로 갈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상상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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