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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Sep 06. 2022

네 번째 만남에 또 모텔이 땡긴다면

무인 모텔 사장의 어떤 날 

 결제하는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팔뚝에서 스마일 모양의 이빨 자국을 보았다. 누군가 ‘앙’하고 귀엽게 깨물어서 생길 법한 자국이었다. 여자와 함께 온 사람 쪽으로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향했다. 입술 옆에 작은 점이 있는, 귀여운 외모를 풍기는 남자는 여자 옆에서 몸을 비벼대며 서 있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난 무인 모텔을 오픈했다. 전 세계적 감염병 때문에 초반에는 운영에 힘이 들었지만, 재난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웬일인지 모텔은 인기가 많았다. 무인모텔이지만 일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결제하는 키오스크 뒤에서 근무하고 있다. 낮엔 잠시 자리를 비워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인’의 역할을 실제로 하기도 하지만 주말 밤엔 꼼짝없이 ‘유인’이 된다. 주말엔 술을 마시고 즉흥적으로 오는 커플들이 많기 때문에 어떤 돌발 상황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상황들 때문에 이름이 무인 모텔이여도 주말 근무는 필수적이고, 그 근무는 주인인 내가 해야 한다. 


 지금 들어 온 커플은 오늘 처음 함께 모텔에 온 남녀는 아닌 듯하다. 여자의 팔뚝에 난 이빨 자국이 이 남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낸 것이라면, 여자는 민소매를 입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키오스크 앞에 선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턱 아래까지는 선명하게 보인다. 어릴 적 불주사 자국이 났던 그 비슷한 위치에 남자의 이빨 자국이 있었다. 흥분해서 깨물었다기보단, 귀여워서 ‘앙’ 하고 깨물었을 스마일 모양의 이빨 자국. 


 아마도 이전 잠자리에서 깨물었겠지? 그러니 당당하게 여자는 이 남자 앞에서 민소매를 입고 함께 다시 모텔로 왔겠지. 술 냄새라곤 하나도 풍기지 않는 남녀의 그림자로 꽁냥꽁냥 애정행각이 드리워졌다. 주말 밤에 키오스크 뒤로 얼굴도 보이지 않는 여자의 팔뚝에 드러난 이빨 자국을 보며 상상이나 하고 앉아 있는 내가 한심해져서 왈칵 눈물이 고였다. 나의 두 번째 손가락을 살짝 ‘앙’ 깨물어보았다. 어떻게 해야 저렇게 작고 예쁜 스마일 모양의 이빨 자국이 날 수 있는 것인지 실험해 보고 싶었다. 강도를 다르게 하며 여러 번 깨물었다. 세 번째쯤인가? 깨물다 아파서 나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내 비명에 결제하던 커플이 두리번거렸다. 나는 쥐 죽은 듯 조용히 아픔을 참았고, 다시 내 눈엔 눈물이 고였다. 


 귀여운 커플은 쪽쪽 소리를 내며 방으로 올라갔다. 이들은 오늘 어떤 이빨 자국을 남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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