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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Sep 16. 2022

여섯 번째 만남에 페스티벌이 땡긴다면

60대 주부의 어떤 날

 내가 사는 분당에는 큰 공원이 하나 있다. 이 공원에서는 매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아름다운 계절에,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재즈와 록밴드를 초대하는 음악 페스티벌인데,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다시 개최한다는 소식을 얼마 전 우연히 접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줄줄이 온다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대동하고, 남편에게 주말 저녁은 혼자 먹으라고 양해를 구한 후 집을 나섰다. 

 

 오늘은 얼마 전 재밌게 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OST를 부른 선우정아가 나온다고 한다. 50대인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 선우정아라는 가수를 알게 되었다. 드라마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에 반해, 그녀의 음악을 찾아들었다가, 기묘하고도 창의적인 음색과 가사에 감탄해 버렸다.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판교 사는 나의 친구, 광미와 함께 화이트 와인과 올리브, 과일과 견과류를 챙겼다. 술은 잘하지 못하지만, 선우정아의 음색에는 왠지 한 모금 해야 할 것 같았다. 


 딸에게 전해 들으니, 인기가 많은 가수가 오면 앉을 자리가 없다고 해서 공연 두 시간 전쯤 광미와 만났다. 무대 중앙 뒤쪽 잔디에 자리를 잡고 우리는 와인도 한잔하고, 누워서 해 질 녘 하늘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도착한 후, 30분쯤 지났을까? 딸 나이쯤 돼 보이는 커플이 우리 바로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캠핑용 테이블과 와인잔을 세팅하더니 아이스박스에서 와인을 꺼내서 따른다. 남자는 한 모금만 마시더니 더 이상 마시지 않는다.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인데, 거의 반병 정도를 여자 혼자 홀짝홀짝 마신다. 아무래도 남자는 운전을 해야 해서 그쯤에서 그만둔 것 같다. 30대 커플인 이들의 대화를 궁금해서 엿듣게 되었다. 그들은 주변에 앉은 사람들을 관찰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여: 저기 봐봐요. 엄마랑 딸이랑 왔네. 딸이 기특하다. 

     선우정아 공연은 저 초딩이 즐기기 쉽지 않을 텐데..

남:  그러게. 쉑쉑 햄버거 먹고 있네. 맛있게도 먹는다. 

여: 아빠는 왜 안 왔을까? 

남: 엄마가 아빠의 자유시간을 준 건 아닐까? ㅎㅎ

여: 그랬다면 저 엄마 정말 멋진 사람이네~


여: 저기 가족은 어떻게 저렇게 아빠랑 아들이랑 붕어빵이냐..ㅎㅎ 

남: ㅎㅎ 헉.. 진짜네. 그러고 보면 유전자가 무섭긴 무섭다.

여: (소곤대며) 우리 옆에 엄마 또래 두 분 보기 좋아 보인다~

남: (소곤대며) 나이 들어서도, 이렇게 같이 문화생활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가 가까이 있는 게 보물 같은 일       인데, 부럽다.

여: (소곤대며) 그러니까요. 멋있으시다.



 그들이 숨죽이며 우리를 가리켜 멋지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나는 멋진 중년이구나. 비로소 옆에 앉아있는 광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손을 꽉 잡으며, “광미야, 너무 좋다, 그렇지?”라고 말했다. 나의 딸도 아직 결혼하지 않아서 딸 또래의 커플을 보면 호기심이 생긴다. 내 옆에 앉은 커플은 이 페스티벌 속 많은 사람 중에 유독 ‘가족’을 바라보며,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알아보는 중인 듯했다. 어쩌면 그들도, 그들 각자의 ‘가족’을 꾸리기를 원하면서, 다른 ‘가족’의 모습을 관찰한 것은 아닐까? 서로에게 조심스럽고 충만한 호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아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커플은 서로에게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있을 지 내심 궁금해졌다. 


 때마침 선우정아는 <동거>를 부르고 있었고, 가을밤의 달은 밝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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