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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Oct 14. 2022

여덟 번째 만남에 의도치 않게 눈물이 흐른다면

거미의 어떤 날_1

 그녀가 없는 시간, 깜깜한 방 한구석 작은 구멍으로부터 나는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부지런히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 방은 습하고 어두운 시간이 많아 내가 좋아하는 환경을 갖추었다. 우연히 떠돌다 발견한 이 장소가 썩 마음에 든다. 게다가 그녀는 이곳에 자주 들어오지 않아서 그녀 몰래 생활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그녀가 불을 켜고 들어올 때면, 후다닥 하고 나의 신분을 숨기려 구멍 속으로 들어가지만,  가끔 잠이 들거나 깜박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어쩌면 그녀가 나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아마 나의 생김새 때문에 날 가만 놔두었을 것이다. 검고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나에게서 공포를 느끼는 이들이 많으므로.


 어쨌든, 그녀는 날 살려주었다. 아니 어쩌다 보니 그녀는 나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의 집 습한 방 한구석에서. 이른 아침과 밤에만 눈이 부신 것으로 보아 이 방은 비교적 아침저녁에 자주 활용이 되는 물이 많은 방, 욕실이다. 오늘 그녀는 아침부터 유난히 자주 불을 켜고 끄길 반복했다.  그 덕에 나 또한 집을 짓다가 구멍 속에 들어가기를 되풀이했다. 구멍 끝에 매달려서 그녀를 가만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직 이 방의 불빛이 아니어도 충분히 환한 시간에 그녀는 내 방에 들어왔다. 내가 ‘방’이라고 지칭하는 이곳의 구석엔 아늑한 나의 집이 위치한다. 그 너머에는 흰색 욕조가 있고 그 작은 틈 사이에 커튼이 하나 있다. 그녀가 욕조에 들어서자마자 샤워 커튼을 힘주어 치는 바람에 내가 며칠 동안 공들여 지은 집이 망가질 뻔했다. 나는 집 끝에 달린 은신처인 구멍 끝에 매달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훌쩍거리며 얼굴을 씻는다. 후엔, 머리를 숙여 머리를 감는다. 이를 닦고 한참을 주저앉아 있다가 일어난다. 욕조의 깊이 때문에 그녀가 쭈그려 앉으면 무얼 하는지 볼 수가 없다. 한쪽 팔을 힘차게 앞뒤로 움직이는 것을 보니 어딘가에 비누칠하는  모습에 가깝다. 한참을 쭈그려 앉아 있던 그녀는 일어나서 나의 집이 있는 곳 일직선상에 위치한 선반 위에 팬티를 널었다. 아마도 그녀의 오른쪽 팔이 격렬하게 움직였던 것은 팬티를 빨고 있었던 것이었겠구나 짐작한다.


 다시 일어선 그녀는 맨 마지막으로 샤워볼에 펌프식으로 된 바디워시를 누르다가 눈에 직격탄을 맞았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를 눈에 가져다 대며 한참 동안 그녀는 눈을 문질렀다. 눈에서 나오는 눈물인지, 샤워기의 물인지 모를 물들이 그녀의 눈에서 뚝뚝 떨어졌다. 그러곤 어이없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하.. 오늘 울고 싶었는데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눈물이 나네.. 참 나.” 


 최근 유독 향이 센 바디워시로 바꾼 그녀는 몸이 아닌 눈에 그것을 집어넣고선 한참을 그렇게 서서 웃는 듯 우는 듯 피식거리며 훌쩍거렸다. 샤워기의 물줄기 소리 때문에 그녀의 울음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눈이 빠질 정도로 문지르고 누르며 눈물을 배출했다. 


 오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울고 싶었다고 말한 걸까? 대신해서 상황을 만들어 준 바디 워시를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며 펌프 입구의 방향을 벽 쪽으로 바꿔 놓은 후 그녀는 샤워기를 잠갔다. 

 

 커튼을 또다시 힘차게 걷어내는 소리에 나는 한 번 더 놀라 구멍으로 들어갔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습기가 찬 거울을 손으로 쓱쓱 닦아낸 그녀는 시뻘게진 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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