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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Oct 14. 2022

아홉 번째 만남에 생일을 공유한다면

거미의 어떤 날_2

 그녀가 없는 시간. 습한 방이 지루해진 나는, 지금의 집에서 나와 다른 곳에 짓기로 했다. 현재 나의 집은 대체로 습한 기운이 돈다. 한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을 즐겨하는 그녀이기에 여긴 습하다 못해 집이 무너져내릴 지경이다. 그리하여, 나는 다른 장소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공들여 지어 놓은 집이 무너지는 것은 가슴 아팠기에, 클라이밍 선수처럼 발을 요리조리 디뎌가며 화장실 바닥으로 내려왔다.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앗, 차가워!”라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습기가 없는 화장실 바닥은 유난히 차가웠다. 그 온도를 통해 뜨거운 여름은 가고 가을밤이 찾아왔다는 것을 이내 알 수 있었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새로운 집은 어디가 좋을지를 탐색하며 나는 두리번거렸다.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났다. 섬유들이 가득 찬 곳. 시원한 바람도 분다. 여기로 정했다. 새로운 나의 집.  


 아침 일찍부터 나가 준 그녀 덕에, 부지런히 아침부터 이사할 집을 지었다. 베란다에 무수히 걸린 그녀의 옷들 아래 위치한 한쪽 구석. 이곳에 새로운 나의 집이 완성되었다. 이른 오전부터 움직였더니 땀이 비 오듯 왔지만 이사한 집 주변 환경은 시원해서 금세 땀이 식었다.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주변은 어둑해져 있었고, 그녀는 주황색 불빛만을 의지한 채 침대에 누워있다. 새로운 집에서도 그녀를 관찰하기 용이하다. 조금만 집을 위로 올려 지으면 그녀와 눈이 마주칠 정도다. 오늘은 아침부터 에너지를 소진해 당분간 지하 방에 지낼 예정이다. 조금 쌀쌀해졌지만, 그녀는 가을바람을 좋아하는가 보다. 베란다 문을 살짝 열어 둔 채,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다. 


 그러다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전화가 온 모양이다. 상대의 말은 들을 수 없었지만, 그녀가 하는 말을 통해 대화 내용의 유추가 가능했다. 


“오빠, 생일이 언제예요?” 

“얼마 안 남았네~!! 뭐 필요한 거나 갖고 싶은 거 있어요?”

“나는 1월 5일~! 억울하게 오빠 생일이 먼저네? 이런..” 

“그럼 나는 맥북 프로 필요하니까 그거 해주면 되겠네. ㅎㅎㅎ” 


  얼마 남지 않은 오빠의 생일에 부담을 느끼는 눈치였다. 아직 생일을 모르는 사이인 것을 보아하니 사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인 듯하다. 통화를 마친 그녀는 한참을 휴대폰으로 검색해본다. 고민이 많아 보이던 그녀는, “아 모르겠다~” 라는 혼잣말을 새어 나오는 한숨처럼 뱉어내더니 이윽고 잠자리에 든다. 


 얼마 후, 사쉐(걸어 두는 형태의 방향제) 두 개가 배송되었다. 포장을 뜯어 하나는 방 안 옷장에 걸고, 나머지 하나는 새롭게 포장한다. 


 포장된 또 하나의 사쉐는 그 오빠에게로 전달될까? 시원한 바다를 연상시키고 과즙이 터질 듯한 만다린 향이 방안을 잠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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