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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Oct 14. 2022

열 번째 만남에 상대의 집에 초대됐다면

개미의 어떤 날

 오늘은 누군가의 생일인가 보다. 늦은 오후부터 집에서 미역국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달콤한 것들이 많은 그녀의 주방에 나는 친구들을 끌고 와 집을 만들었다. 난 아주 작은 존재라서 그녀의 눈에만 띄지만 않는다면 오래 살 수 있지만 친구들의 대부분이 그녀의 손가락에 눌려서 죽임을 당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래서, ‘오늘이 어쩌면 내 생의 마지막 날이구나.’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 뿐이다. 그녀가 요리하며 흘린 작은 설탕 조각, 빵 부스러기 같은 것이 나의 주식이다. 그것을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옮기다가 그녀에게 걸려 죽을 뻔한 적도 많지만. 


 오후부터 주방에서 분주한 그녀를 싱크대 한쪽 구석에서 지켜보기 시작했다. 미역국은 처음 끓여보는지, 인터넷에 나와 있는 레시피를 따라 순서대로 조리하기 시작한다. 메인 요리는 불고기이다. 불고기에 들어가는 달콤한 설탕 냄새에 순간 군침이 돌았다. 그녀는 요리하다 말고 느닷없이 와인잔에 와인을 따르더니 음미한다.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처럼 살랑살랑 춤을 추며 식사를 준비한다. 그녀는 와인병에서 와인을 따를 때 꼭 한 방울씩 떨어트리는 버릇이 있는데, 아마 잘 따르는 기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한 방울을 떨어뜨린 그녀가 깜박 잊고 닦지 않은 와인이 나의 발에 적셔져 의도치 않게 맛을 본 적이 있는데, 먹고 그날 취해서 집에 제대로 찾아갈 수 없었다. 머리 아픈 것을 마시고 저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인간종을 이해할 수가 없지만, 그녀가 이것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흥미롭긴 하다. 


 보글보글 미역국 끓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테이블 세팅을 한다. 작은 선물이 놓인 생일상을 차려 놓고 누군가를 기다린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한 남자가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여자의 집에 들어선다. 처음 보는 남자다. 테이블 위에는 여자가 터키에서 사 온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이 놓여 있고, 그 옆엔 잘 차려진 2인분의 밥상이 기다리고 있다. 여자는 앞치마를 두른 채, 남자를 맞이한다. 제법 신혼부부 같은 기분이 드는지 둘은 서로 쑥스럽고 어색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리고 이 모습을 직관하니 꿀잼이다.  


 남자는 엄마 외의 이성에게 생일날 미역국을 얻어먹은 게 처음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녀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소극적으로 건넨 이 말에 나의 주인님은 되려 감동한 눈치다. 그날 밤, 남녀는 서로의 몸에 대한 탐욕을 주저 없이 드러내고, 몸 구석구석을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며 외로움에서 해방한다. 


 자신을 위한 생일 선물과 밥상을 정성스레 차려준 나의 주인님에게 남자는 고마워하며 애정이 어린 눈빛을 다음날까지 보냈다. 그 시선이 예쁘다. 가을날의 햇빛과 바람, 습기는 서로가 느끼는 애정의 크기만큼 완벽했고, 나 역시 오랜만에 새롭게 그녀의 공간에 등장한 남자에게 소리 없는 응원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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