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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Sep 06. 2022

다섯 번째 만남에 캠핑이 땡긴다면

캠핑장 사장의 어떤 날

 여자는 파란색 50L 가방을 씩씩하게 짊어지고, 남자는 비교적 작은 등산 백팩을 매고 양손엔 짐을 가득 들었다. 캠핑장에 들어온 이 커플에게 체크인 확인을 위해 예약자 이름을 물었다. 여자는 이름을 말했다. 누가 봐도 여성스러운 이름을 가졌지만 이름과 다르게 무척 씩씩해 보였다. 반면, 남자는 억지로 여자를 따라온 듯, 캠핑장을 낯설어하는 모습으로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무엇이 그들을 이곳에 함께 오도록 만들었나. 얼핏 봐도 여자와 남자의 취미는 달라 보였다. 여자는 꽉 졸라맨 등산화와 등산 양말을 신고 고어텍스 바람막이에 청바지를 입었다. 남자는 컨버스에 반바지, 면 티셔츠를 입고 비니모자를 썼다. 산과 숲이 있는 이곳엔 어울리지 않은 룩이었지만, 그래도 옷 입는 센스를 보아하니 자기 취향은 확실해 보이는 남자였다. 


 캠핑장 사이트 젤 꼭대기에 위치한 자리를 예약한 여자는 남자와 함께 올라간다. 오늘은 일요일. 그래서인지 캠핑장은 한산하다.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녀는 한참 대한민국의 경제를 책임져야 할 나이에, 일요일 1박을 예약한 상태이다. 황금 같은 휴가를 반납하고 남자는 이곳으로 끌려온 건가?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 포스를 풍기던 남녀의 자리 근처로 가서 나는 나무에서 떨어진 솔방울을 정리하는 척하며 그들의 자리 근처를 청소했다.


 내가 운영하는 캠핑장은 잣나무와 소나무가 뒤섞인 숲속 안에 있다. 10여 분간 짐을 짊어지고 약간의 등산을 해서 올라와야만 캠핑장을 만날 수 있다. 고행 끝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꼭대기 사이트를 예약한 남녀. 여자의 주도하에 텐트, 테이블과 의자까지 데크 위에 촥촥 펴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텐트 안으로 들어가 매트와 침낭까지 펴두고, 잠자리를 정리했다. 남자는 눈치 없이 여자가 펴 둔 의자에 이미 앉아, 아이스박스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뭘 했길래 난 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으로 쓱 닦아내며 여전히 정리하고 있는 여자의 눈치를 본다. 


 “어느 정도 됐으면 앉아서 한 잔 해~” 


 남자는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것을 이 짧은 시간에 격렬히 느끼는 중이는 듯했다. 내일이면 다시 걷어서 접고 정리해야 되는 것을 왜 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었다. 반면, 여자는 완벽히 세팅된 오늘의 집이 꽤 마음에 드는지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이 맛에 캠핑하러 온다니까! 어때요? 막상 귀찮아도 오니까 좋지 않아요?” 

 “..응 뭐 좋네..” 

“첫 캠핑이 중요한데, 이게 안 좋으면 다시는 안 따라올 텐데.. 그러면 또 나 혼자 다녀야 하는데~” 


 여자는 남자가 부디 그의 첫 경험이 좋길 바라는 중이다. 그래야 간만에 마음에 든 이 남자와 취미생활까지 공유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면 성애자인 남자와 여자는 그들이 함께하는 첫 캠핑에서 우동과 오뎅 꼬치, 그리고 소주를 준비했다. 청양고추 듬뿍 들어간 오뎅국과 김치우동은 이제 막 가을이 다가오는 이 계절에 꽤 잘 어울리는 메뉴였다. 


 내가 알짱거리면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할지도 몰라서, 일단 후퇴했다. 어둑해질 때 그들이 매점에 오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매점 문을 닫기 30분 전인 9시 반경, 커플은 소주 한 병과 마시멜로를 집었다. 


 “죄송한데, 나무젓가락 한 쌍만 주실 수 있을까요?” 


 달아오른 얼굴로 여자는 나에게 부탁했고, 나는 그들의 성공적인 첫 캠핑을 응원하기 위해 흔쾌히 그것을 기부했다. 


 30분 후, 캠핑장을 순찰하며 먼발치에서 그들을 관찰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 사이좋게 마시멜로를 나눠 먹고 있었다. 마시멜로의 달콤함이 지나치다 싶을 땐 소주를 한 잔씩 마시는 듯싶었다. 입 안의 달콤함은 소주로 희석하고 있었지만, 그들 사이의 달콤한 기류는 그 어느 것으로도 희석될 수 없었다. 남자에겐 인생 첫 캠핑인 시간이 그렇게 달콤하게 흘러가는 중이었다. 


 남자에겐 모든 것이 어설펐지만 여자와 숲속에서 감각한 모든 것들이 인상 깊었던 하루. 그는 어느덧, 그녀와의 다음번 캠핑을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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