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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Aug 30. 2022

세 번째 만남에 모텔이 땡긴다면

교대역 골뱅이탕 사장의 어떤 날

 회색 긴 코트를 입은 여자가 가게에 들어왔다.


 “곧 자리에 앉을 건데 그 전에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화장실에 다녀온 여자는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다시 문밖으로 나갔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지, 화장실이 급했나?’ 


 화장실에서 빠르게 나온 것을 보아하니 볼일을 본 것이 아니라 아마도 화장을 고친 것 같다. 문밖으로 나간 여자는 가게 유리문을 활용해 옷매무새를 체크하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귀 뒤로 넘기기를 반복하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잠시 후, 그녀의 앞에 키가 작고 귀엽게 생긴 남자가 도착했다. 설렘 가득한 미소 뒤에 약간은 어색한 웃음을 띠며 서로 인사하고 함께 가게로 들어왔다. 


 교대에 위치한 나의 가게, 일요일 5시. 이 시간엔 손님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를 엿듣기에 최적의 시간이다. 커플이 될 수 있을지 아닐지 상상의 여지가 남아있는 남녀를 보고 있자니 주말의 마무리가 즐거워질 것 같다.  


 나의 가게에서 밀고 있는 메뉴는 골뱅이탕이다. 남녀는 그걸 알고 온 듯이 골뱅이탕과 정종 한 병을 시켰다. 일요일 오후에 정종을 시킨 것을 보니, 월요일이 부담스럽지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인가? 갑자기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가장 처음으로 들어온 이 남녀는 11시가 될 때까지 정종 두 병을 비운 채로 여전히 자리에 남아 있다. 5평 남짓한 가게 안엔 세 팀의 손님들, 7명이 남아 있다. 그 사이엔 조금 바쁘고 시끄러워서 남녀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가게 안의 손님들은 각자의 테이블에 남은 음식과 술을 비우느라 바쁘다. 


 그들은 바빠졌고, 나는 한가해졌다. 그래서 다시 오늘의 첫 손님인 남녀의 테이블에 집중하기로 했다. 귀까지 빨개진 여자는 갑자기 가방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더니, 큰 직사각형을 그린다. 8개의 칸을 나누고, 그 칸 안에 다종다양한 도형들을 그리더니 남자에게 넘겨준다. 갑자기 술 마시다가 게임을 하는 건가? 릴레이로 그림을 그리는 건가? 궁금증이 생겨 고개를 빼서 소머즈의 눈으로 종이를 응시하였다. 아! 그림으로 심리테스트를 하는 것인가 보다. 휘리릭 그린 남자의 그림을 여자가 설명해주고 있다. 


 설명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자의 말을 흥미롭게 듣고 있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끈적하다. 마지막 잔이 될, 남은 정종을 서로의 잔에 털어주며, 남자는 갑자기 여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더니 여자의 귀에 대고 귓속말 한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남자가 자리를 옮긴 덕에 입 모양을 볼 수 있었다. 


 ‘이것만 다 마시고 이 근처에서 자고 갈래요?’


 오? 이 남자 꽤 진취적인 현대 남성이군. 아직은 다소 어색해 보이는 걸로 보아, 약 서너 번째 만남으로 추측되는 남녀의 대화에서 듣기엔 이른 감이 있는 문장이었다. 여자의 대답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난 소머즈의 눈을 다시 가동했다. 


 ‘앗.. !@#$% 마법…&^*)에요…’  


 다른 단어는 캐치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법’이라는 입 모양은 정확히 봤다. 이런.. 내가 다 안타까웠다. 여자는 진짜로 마법에 걸렸을까, 아니면 오늘은 내숭을 떨고 싶었던 걸까. 


 계산하고 나서는 남자의 뒷모습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가게 문을 열자, 늦가을의 찬 바람이 쌩~하고 밀려 들어왔다. 담배나 한 대 피울 요령으로 밖으로 나가 멀어지는 남녀를 바라보았다. 몸을 웅크리며 걸어가던 여자는 남자에게 팔짱을 꼈고, 여자의 가슴이 남자의 팔뚝에 닿았다. 여자를 옆눈으로 바라보던 남자는 여자에게 어깨동무하고 함께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교대 골목길엔 모텔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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