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3역을 하는 여자의 일상 극복기

by 우비

꿈인 줄 알면서도 깨지 않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계속 알람이 울렸지만 더 자고 싶었다. 졸린 눈을 겨우 떠서 시계를 보니 아침 여덟 시. ‘큰일 났다’ 아침도 먹어야 하고 율이 어린이집에도 보내야 하고 오늘이 마감인 카피도 써야 하는데. 한 시간 안에 그 모든 일을 다 해내야 한다. 먼저 냉장고로 달려가 누룽지를 꺼내 냄비에 담는다. 그 순간 구세주처럼 나타난 또 한 명의 나는 율이를 안고 세수를 시킨다. 식탁 구석의 노트북 앞에는 또 한 명의 내가 카피를 마무리하고 있다. 달달한 믹스커피까지 홀짝이면서. 내가 필요한 자리에 나는 끝도 없이 생겨난다. 이제야 살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웃다가 놀라 눈을 떴다.

시계가 아침 여덟 시 삼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헉...... 남편도 율이도 지각이다.

삼십 대 중반이 되어 결혼을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는 출산을 했다. 남편과 아이가 있는 아침은 간절히 꿈꾸던 행복 중 하나였다. 오손도손, 도란도란, 알콩달콩 같은 의태어가 어울리는 따뜻한 삶. 선샤인 효과의 필터를 씌운 일상의 풍경들을 상상하기도 했다.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 일상은 생각했던 것만큼 좋았다. 그리고 생각지 못하게 나쁘기도 했다.

40년간 익숙해진 바이오리듬은 육아와 함께 무너졌다. 먹고, 자고, 싸고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엄마의 삶은 가끔 멍하게 창 밖을 바라보게 했다. 친구도, 자매도, 엄마도 왜 내게 육아의 고통에 대해 신랄하게 알려주지 않았나 원망 섞인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눈물바람 하는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산후 우울증은 왜 걸려야 하지? 그렇잖아도 하나뿐인 몸뚱이가 피로를 털어버릴 날이 없는데.

남편의 아내로 사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30년을 기다려 만난 인생의 배필이다. 너무 좋아서 내가 결혼하자고 조르기도 했던 남자다. 하지만 30년이나 다르게 살았단 건 살아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쩜 이렇게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있을까 매일 매 순간 신기하고 이해가 안 됐다. 남편이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동안 나는 살림과 육아를 책임져야 했다. 한동안 일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경단녀의 대열에 내 이름까지 올려야 하나? 그렇잖아도 신문이나 뉴스에서 경단녀로 고통받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듣는데.


육아에 지치고 싶지 않았다. 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매일 새벽 글을 썼다. 밤이 되면 필라테스를 했다. 율이의 엄마이기도 하고, 남편의 아내이기도 하지만 원래 나는 나였기에. 나부터 챙기고 율이와 남편을 더 아껴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서인지 산후우울증은 문턱까지 찾아왔지만 걸리지 않았다. 사회의 경력은 단절되었지만 새로운 꿍꿍이를 모의하기도 했다.

삼인분의 삶이 살아볼 만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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