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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남매 Oct 22. 2023

아제르바이잔_여든 살의 멋진 그대에게

[아시아] 엄마가 다시 아프다

정기 검진 날 주치의 선생님께서 주사에서 먹는 약으로 바꾸자고 하셨다. 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것이다. 

바꾼 항암제도 효과가 없을까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도 암의 크기는 조금씩 줄었다. 뿐만 아니라 구토 같은 부작용도 사라져 엄마는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했다. 암의 크기보다 부작용이 줄어든 게 엄마에겐 더 기쁜 일이었다. 

 먹는 약은 꽤 오랫동안 효과가 있었다. 잘 먹게 되니 체력도 좋아졌고, 체력이 좋아지니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점차 우리의 삶이 제자리로 찾아가는 것 같았다. 

 섣부른 희망이었을까. 치료가 잘 되고 있다 생각했는데 암은 커졌고 다른 곳에서도 발견됐다. 

먹는 약을 중단하고 다시 항암주사와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됐다. 두어 번의 치료가 진행 됐지만 효과는 없었다. 점점 성공보단 실패와 가까워졌고, 엄마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바쿠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드리웠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오래된 카메라를 꺼내며 사진을 찍어 달라는 그는 처음 본 날도 웃고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호스텔이었다. 호스텔은 언제나 어린 친구들로 가득하다. 그런 곳에서 주름이 가득한 할아버지를 만나는 건 매우 신선한 일이었기에 이곳에 머무는 그가 몹시도 궁금했다.  


그를 다시 보게 된 건 이틀이 지나서였다. 야경을 보러 가기 전 쉬기 위해 숙소로 돌아왔을 때, 그는 스태프와 지도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뒤돌아 서는 그와 눈이 마주쳤고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일본인이었고 홀로 여행 중이었다. 내일 새벽에 호스텔에서 연계해 준 투어를 갈 예정인데 집한 장소인 여행사까지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꾸깃꾸깃한 그의 지도 안에 빨간색으로 동그라미 쳐진 여행사는 우리가 봐도 찾기 어려운 곳에 위치했다. 어둑한 새벽에 그곳을 찾아간다는 건 구글 맵을 가진 우리도 힘들 것 같았다.


 여행사 가는 길을 미리 익혀두면 내일 이동하는 게 수월 할 것 같아 할아버지와 함께 숙소를 나왔다. 길잡이가 될만한 건물을 확인하며 20분 정도 걷고 나니 여행사 앞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할아버지의 이름이 적혀있는지도 확인했다. 그제야 그가 다시 환하게 웃었다.

맥도널드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에게 홀로 여행 중인 이유를 물었다. 

여든이 된 그는 10년 전 아내를 먼저 보내고 홀로 집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때 TV속 여행 프로를 보며 나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 생각만으로도 멋진 할아버지는 홀로 여행을 하려면 영어는 필수라 생각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 영어공부를 시작했고 지금도 배우는 중이라 하셨다. 


과연 나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영어공부를 하고 여든이 된 나이에 홀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무릎만 성하다면 패키지여행쯤은 괜찮을 것 같지만 나 혼자 여행은 꿈도 꾸지 않았을 것 같다. 게다가 그 나이에 새로운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더욱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둑해진 거리에 환하게 불빛이 들어온다. 사진을 찍어 달라며 그가 오래된 카메라를 우리에게 건네준다. 카메라 속 그의 미소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엄마의 여든이 궁금해졌다. 여든의 엄마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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