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재회
그녀와의 재회
오늘, 오랜만에 그녀가 편의점에 들렀다. 그녀는 여느 때처럼 성큼성큼 쿨러 쪽으로 걸어가 맥주 한 캔을 집어 들고 계산대에 섰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내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녀는 살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날 아는 거예요? 기억하는 거예요?"
그녀의 모습은 2024년, 을씨년스럽게 추웠던 겨울 저녁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그녀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근무 시간에 종종 들러 소주, 맥주, 라면을 사갔다. 어느 날 새벽 5시, 택시에서 내려 현금인출기 앞에서 돈이 나오지 않는다며 발을 동동 구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엄마나 아버지를 닮아 마음에 오래 남았었다.
"그때 소주, 맥주, 라면 사셨어요. 제가 밥은 드셨냐고 여쭤봤잖아요." 내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 내가 그랬지. 주책없이."
오랜만의 만남에 그녀는 반갑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도 그때의 기억을 꺼냈다. "그 새벽에 현금인출기 고장 나서 기다리시던 거, 걱정돼서 해가 뜨면 가셨으면 했어요. 나중에 창고 물건 빼러 갔다오니 안 계신 거 알고 더 걱정했었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젊은 양반 기억력이 좋네. 사실 나는 시골 골짜기에 살아요. 가끔 속이 답답할 때 읍내로 나와 며칠 머물다 가죠."
그녀는 이번엔 숙소를 편의점에서 조금 먼 곳에 잡았다고 했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오늘 좀 기분이 나빴어요. 맥주집에 사람이 많길래 나도 오백씨씨 하나 마시려고 들어갔죠. 젊은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늦은 시간인데도 북적였어요."
그녀는 맥주집에서 겪은 서운한 일을 털어놓았다.
"한잔하고 싶어서 들어갔는데, 젊은이들이 나이 든 내가 들어가니까 웃더라고요. 신경 안 쓰고 맥주 하나 달라고 했더니, 어떤 젊은 직원이 영업 끝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옆을 보니 다른 손님은 계산을 하고 있었다며 속상한 마음에 그녀는 큰 소리로 한마디 했다고 하셨다.
"아니, 늙은이한테 맥주 안 파는 거예요?"
요란한 소리에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다른 직원이 달려왔다. 손님을 응대한 직원이 입사한 지 얼마 안된 신입이라고 하며 사과했고, 마무리로 맥주 한 잔을 대접했다고 한다.
그녀는 아마도 젊은 시절이 그리워 젊은이들 틈에 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는 종량제 봉투를 사려 했지만, 마침 재고가 없어 큰 흰 봉투를 드렸다.
"이제 집에 가려구요. 내일 신랑이 데리러 온대요. 옷가지 좀 챙겨가려고요. 하여튼 날 기억해줘서 고마워요."
그렇게 인사를 나눈 그녀는 숙소를 향해 문을 열고 나갔다. 다행히 그녀가 머무는 숙소는 내가 아는 화가님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늦은 밤이라 걱정이 되어 연락했더니,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했다.
퇴근길, 집으로 가는 길에 골목을 살펴봤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숙소에 문자로 부탁드렸다. 그녀가 무사히 도착하면 꼭 알려달라고.
다음 날 오전 8시,
화가님에게 연락이 왔다. "어젯밤에 들어오셨어요. 힘들어서 오다 쉬다 오다 쉬다 하느라 늦으셨대요. 가끔 읍내로 나와 쉬었다 가시는데, 스스로에게 힐링 시간을 주는 것 같아 조용히 지켜보고 있어요."
화가님은 걱정 말라며 전화를 끊으셨다.
우리는 때로 돌아갈 수 없는 과거로 돌아가 그 순간을 다시 느끼고 싶어 하거나, 고치고 싶어 한다. 그녀의 모습에서 그런 마음이 느껴졌다.
#과거 #젊은시절 #기억의역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