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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Oct 09. 2024

장애형제자매를 둔 세상의 모든 둘째들에게

둘째를 낳을 결심.

그 결심이 생기기까지 7년이 걸렸다.


어느 놀이치료 선생님이 물었다.

'어머님 왜 지수 동생을 낳지 않으세요.'

그때 지수는 6살이었다.


두렵고 무서워서, 둘째를 낳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어머님 동생을 낳으면, 지수한테도 좋지만 어머니한테는 더 좋을 거예요'

낮고 온화한 권유는 아기를 낳지 않겠다는 , 미세한  사이를 파고들었다. 마음 전체가 흔들렸다.


임신을 했다.

임테기 두줄, 아기집까지 확인했다.

그리고 두 번째 진료. 이상했다. 빈집이었다. 아기가 없었다.

의사는 이런 것을 계류유산이라고 했다.

소멸. 불이 꺼져있는 빈 아기집을 한동안 지켜봤다.

6년 만에 생긴 아기의 빈 집을 허무는 데는 단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간절해졌다. '낳아야지'가 아니라 '낳고 싶다'가 되었다.

다시 아기가 찾아왔다.

아기집을 확인했고 심장소리를 들었고 임신 대백과 사전의 매뉴얼처럼 태아의 성장은 순조로웠다.

양수검사를 권유했으나 하지 않았다. 무조건 낳을 아기였으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절에서 가장 좋은 날 좋은 시간을 받아 둘째를 낳았다. 딸이었다. 

막 태어난 아이에게 젖꼭지를 물리는 순간 나는 느낌이 왔다.

힘이 세구나, 이 아이는 정상이겠구나.

그래, 나의 온 에너지를, 엄마가 줄 수 있는 모든 힘을 너에게 줄 터이니, 너는 지금처럼 끝까지 악착같이 빨아대거라. 엄마의 것은 이제 다 너의 것이다. 단 하나만 빼고.

첫 번째 주문을 걸었다.

2008년 10월 20일 PM 3시 30분.

 

아이는 잘 먹고, 잘 자고, 큰 병치레 없이 잘 컸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이렇게 쉬운 거구나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그 모든 것을 둘째로부터 느꼈다.

나에게 둘째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었고, 희망이었고, 미래였다.

학부모로서  나의 위상도 달라졌다. 매번 기죽었던 장애학생 부모에서 반장 엄마, 반대표 엄마가 되었다. 어릴 때 둘째는 다재다능했다.

욕심을 부렸다. 학군지가 아니었으므로 전국에 몇 되지 않는 입학시험을 치르는 중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6학년 때부터 입시생이 된 둘째가 안타까웠지만, 공부만이 둘째의 숙명적인 핸디캡을 극복할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숙명적인 핸디캡이란 지수의 존재였다.

태어나보, 장애인의 동생, 비장애형제 그룹에 속하게 되어버린 둘째의 숙명을 조금이라도 씩씩하게 헤쳐나가라는 엄마의 두 번째 주문이었다.


두 번째 주문은 통하지 않았다.

중1, 사춘기가 왔다.

보통의 사춘기였다면  그럭저럭 지나갈만 했을 것이다. 워낙 밝은 아이였으니까.

사춘기가 절정이던 중2, 어떤 인생드라마를 보았다. 그리고 자신과 닮은 주인공을 만났다.

tvN '우리들의 블루스' 주인공 영옥.  

배우 한지민씨가 연기한 제주 해녀 영옥.

영옥의 쌍둥이 언니 영희는 다운증후군이었다. 게다가 부모 모두 일찍 돌아가셨으니, 영옥은 장애인 언니의 세상 하나뿐인 보호자였다.

둘째는 영옥의 삶에서 자신을 투영했다.

나랑 똑같은 언니가 있네.  나도 저런 삶을 살게 될까.


영옥은 예뻤고 남자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언니의 존재를 아는 순간, 사랑했던 남자들이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래서 드라마 속 영옥은 남자들을 그냥 가볍게 만나는 상대로만 대하였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사람들은 함부로 말했다. 장애인 형제를 둔 사람은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너무나 큰 결격 사유를 가지고 있다고... 둘째의 처 위에 굵은소금이 눈처럼 쌓였다.

엄마 아빠는 왜 언니 같은 장애인 형제를 내게 만들어줬을까. 차라리 혼자라면 좋았을 텐데...

결국 사춘기라는 잔잔한 파도는 드라마라는 방파제를 만나 흰 물기둥이 솟구치는 너울성 파도가 되었다.


분노를 풀 대상이 필요했다.

엄마, 내 삶의 치명적인 약점을 안겨준 엄마, 내게 늘 공부나 하라던 엄마에게 퍼부어야겠다.

엄마인 나 역시 뜻대로 자라주지 않는 둘째가 미웠으니 너그러운 엄마가 되어주지 못했다.

나는 너에게 누가 뭐래도 최선을 다했으므로 당당하다는 엄마의 반론.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다만 희망이 생겼다면 부산지점으로  발령을 받았던 남편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남편의 도움이 컸다. 날카로운 칼을 칼집이 되어 품었다.

엄마 아빠가 미안해

그런데 언니는 네 삶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거야.

너는 그냥 너의 인생을 살면 돼

둘째에게 건 세 번째 주문이었다.


둘째에게 언니는 가족이지만 숨기고 싶은 존재임을 이해했다. 그것을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다. 둘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였다. 새로운 학원에 등록하면 선생님들은 자연스러운 첫인사로 형제가 있냐는 질문을 하셨다.


-형제가 있니?

-언니가 있어요

-몇 살이니?

-고등학생이에요

-어느 학교 다니니?

-특수학교 다녀요.

-영재학교니? 어머 공부를 잘했나 보네

-.....


겨우 5, 6학년이었던 둘째가 언니에 대해 더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 그 뒤의 설명은 엄마인 나의 몫이 되었다.

둘째는 어릴 때 언니를 좋아했다.

늘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자신을 봐주지 않는 언니였으나 언니는 소중한 가족이었다.

5살 때 자기가 다니고 있던 유치원 앞에서 언니가 넘어진 것을 보고 우리 언니 넘어졌다며 통곡을 하며 울던 아이였다.


그래 기다리자, 주인공 영옥이 오롯이 혼자가 되기 위해 바다에 들어갔던 것처럼

자신만의 바다에 들어간 우리 둘째가 다시 물 위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


1년 후 둘째는 스스로 바닷속에서 나왔다.

단단한 조개의 입을 벌려 기어이 진주 한 알을 가지고 나왔다.

기숙사에서 동고동락한 친구에게 장애인 언니의 존재를 털어놨다

그게 별거냐는 식의 친구반응에 위안을 얻은 모양이다.

그리고 누구나 하나쯤은 쉽게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언니를 품고 행복하게 사는 엄마 아빠의 모습에서 결혼에 대한 환상이 생긴다고 했다.

결혼도 빨리 하고 싶다 했다.

언니 때문에 싫다고 하는 그런 인간성 나쁜 남자는 안 만나면 되니까 걱정 안 한다고 했다.


난 언니 걱정 안 할 거니까

그러니 엄마 아빠 약속해

언니보다 오래 살 거라고

둘째가 우리에게 건 첫 번째 주문이자, 우리 부부의 소망이었다.


고1이 되었다.

생각보다 녹록지 않은 수험생활. 시험만 보고 나면 공부 머리가 없다며 좌절한다.

둘째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가을 야구와 점점 예뻐지는 본인의 얼굴. 늘어가는 화장술.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하늘을 날겠다고 하니 해녀는 되지 않으려나보다.

오늘은 가족 톡방에 닷없이 일본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시험 본 다음 날이니 누가 봐도 도피성 발언.

엄마로서는 진정 환장할 노릇이다.

그래도 둘째가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뿐이다.

여전히 언니에게 살가운 동생은 아니다.

오히려 지수에게는 잔소리꾼. 언니가 조금이라도 스스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 큰 동생이다.


느닷없는 유학바람이 분 둘째에게 카톡을 보낸다.

넌 뭐든지 잘 해낼 아이야

끝까지 해보고 결정하자

엄마 아빠는 믿어

엄마의 네 번째 주문이다.

나의 사랑하는 첫째와  둘째. 지수가 둘째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바다  위를 나온 동생에 대한 사랑이자 미안함이지 않을까. 모든 것은 엄마의 짐작이다.

Epilog


에세이 제목을 '장애형제를 둔 세상의 모든 둘째들에게'라고 지었다.

장애를 가진 언니로 괴로워하던 나의 둘째를 생각하며 쓴 글이기도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이미 비장애형제라고 명명된 세상의 모든 둘째들에게 보내는 나의 심심한 위로와 사랑이다.

너희들을 낳은 건 '부모의 짐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오늘의 나의 브런치 에세이가

'우리들의 블루스'를 쓴 노희경 작가에까지 닿기를 바란다.

당신의 극본으로 나의 둘째는 더 아픈 사춘기를 겪었지만,

깊은 바다에서 스스로 헤엄쳐 나오는 방법을 알았다고, 더 단단해졌노라고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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