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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송이 Oct 16. 2024

너에게 나무그네가 되어줄게

나와 함께 진짜 별을 낳은 사람, 별이 아빠에 대한 이야기이다.

25년 전, 우리는 결혼했다.

그때 오묘하고 찬란했던 마음을 담아 시를 쓴 적이 있다.


별들의 결혼식


-1999년 12월 5일 11시 20분

우주의 어느 한 웨딩홀에서는

떠돌이 행성들의 혼례가 있었다


멀리서 네가 보인다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넌 초고속 수십만 km의 궤도 속도로

무섭게 움직이고 있지, 달려오고 있지


갓난아기 푸른 별 때부터

우린 백만 년 후, 오늘을 알고 있었을까?

너의 궤도가 나를 향해

이렇게 오고 있는 짐작을 했었을까?


별들의 충돌 3초 전

그래도 나 아직 떠돌고 싶은

우주의 시간이 더 많은데

이 순간, 너무도 떨리고 또 두렵고

정말 멈추고 싶은데


저길 봐, 은하계 수십만 개의 조명

수십만 별들의 하객들이 우릴 보고 있어

온 우주가 부서지게 껴안아

또 다른 갓난아기 푸른 별을 낳자

저기 하나님도 우리의 결혼식을 지켜보고 계셔.




우리가 만난 처음, 우리의 결혼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때의 우리도 갓난아기 푸른 별에게 장애가 생겼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별들의 결혼식이 끝난 1년 2개월 뒤 진짜 별이 태어났다.

젊은 부부는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나 막막했고, 두려웠다.

서로의 조타수가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별이가 23살까지 무탈하게 성장하기까지 남편의 공이 컸다.

백화점에 입사한 남편은 휴무일이 평일이었다.

남편은 친정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7살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거의 매일 별이의 등교와 평일 치료를 전담했다.

수많은 치료의 날들 중에 남편에게 가장 고마웠던 적이 있었다.  

아이가 수치료를 받을 때였다. 물속에서 하는 치료였는데, 치료가 끝나면 아이를 씻겨야 했다.

당연히 아빠가 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사정이 생겨, 내가 휴가를 내고 가야 했다.

복지관 수치료 학부모 대기실에는 모두 여자 활동보조인과 엄마들만 있었다.

게다가 아이를 씻기는 샤워장 역시 아빠가 딸을 씻기기에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다.

어떤 분이 말을 건넸다.

"오늘은 지수 엄마가 왔네~맨날 아빠가 오시더니 아빠가 참 대단하셔"

그 말은 남편에 대한 칭찬이자 동시에 나에 대한 질책이었을지 모른다. 질책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게 한 번도 싫은 티를 내지 않았던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안쓰러움이 미처 다 잠그지 못한 샤워기의 물처럼 뚝뚝 떨어졌다.


치료가 없는 날이면 별이를 데리고 야구장에 데리고 다녔다.

아빠의 직장이 백화점이었으므로, 나는 주말마다 아빠의 직장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별이가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은 아빠의 직장에 다 있었으므로 그곳은 별이에게 천국이었다.

그렇게  아빠의 품 안에서 별이는 행복하게 성장했다.

남편의 책임은 또래에 비해 컸다. 연로하신 시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다니는 일도, 농사를 돕는 것도 다 남편의 몫이었다. 26살에 결혼한 남편은 빨리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회사 승진 시험을 위해 한국사 시험, 영어인증시험까지 공부했으니 참 열심히 살았다.

결국 남편은 별이의 어린이집 졸업식 날, 장한 아버지상을 받았다.  

우리 가족에게는 노벨평화상과 버금가는 상이 었다.


별이가 크자 남편에게도 시간 여유가 생겼다.

쉬는 날이면 골프도 치고, 독서도 즐기고, 블로그에 글도 쓰면서 지낸다. 

지난 25년 중에 가장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남편에게 출연을 요청했다.

이번 별이의 연재가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당신이 한번 출연해야 하지 않겠냐고.

당연히 예스였다. 본인의 블로그에 미발행한 글을 내게 먼저 보내줬다.

물론, 우리 별이에 대한 글이다.

남편의 글은 성격만큼이나 단순하고 소박하다. 또한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솜씨에 비하면 너무나 투박하다. 그러나 별이에 대한 아빠의 진짜 마음이 담겨있으니 내게는 어떤 글보다 뭉클하다.





나무그네

내가 매년 하는 일 중에 절대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이 한 가지가 있다

나무그네에 오일스테인 페인트를 칠하는 일이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오래전부터 우리 집 정원에는 나무그네가 있었다

매년 오일스테인으로 칠하지 않으면 썩거나 벌레들이 침입해서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칠해야 하고, 안전한 지도 가끔은 확인해야 한다

누가 하라고 잔소리하지는 않지만, 잊어버리지 않고 매년하고 있다


이 나무그네는 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어릴 때부터 이곳에 앉아서 그네를 타며 즐거워했다

요즘은 어릴 때 보다 잘 타지는 않지만, 가끔은 앉아서 세상을 본다

나무그네는 별이의 놀이터였고, 답답함을 잠시 벗어던질 수 있는 장소였다.

그래서 나는 별이를 위해 오일스테인을 칠한다.


그리고 나는 별이의 나무 그네가 된다

별이가 나무그네에 앉아, 발을 높이 들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을 때처럼

별이가 나에게 앉아, 발을 높이 들고 이 세상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이동했다.

긴 시간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출근 전에 별이의 일정이 먼저였다.

휴무날은 별이의 로드 매니저로 별이의 많은 스케줄을 소화했다.

이제는 별이가 어느새 커서 나의 스케줄을 먼저 확인하고 요청한다.

아빠 오늘 쉬지? 나 데리러 와 줄 거지? 아빠 마트 함께 갈 거지?

별이는 나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별이와 함께 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럼에도 나무그네는 항상 제자리에 있다.

일 년에 한 번씩 관리해 주는 우리 집 나무그네처럼

나는 매일매일 나의 건강을 위해 나를 돌볼 것이다.

우리 별이 보다 딱 하루만 더 살 수 있는 날까지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2024.10.12 별이 아빠의 하루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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