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아버지의 시간은 온통 ‘밤(栗)’이었다. 밤(夜)에도 밤(栗), 낮에도 밤(栗). 세상엔 낮과 밤이 있지만, 요즘 아버지의 하루는 온통 밤뿐이다.
우리 집 뒷동산 아래, 텃밭에는 시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밤나무 몇 그루 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랫동안 아무의 관심도 받지 못한 나무였다. 남편은 밤을 싫어했고, 나는 까는 걸 싫어했다. 남편은 어릴 적 하도 먹어서 이제는 물린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밤은 늘 마트의 맛밤이었다. 하지만 친정아버지가 우리집에 오신 뒤, 그 나무는 비로소 제 주인을 찾았다.
드디어 낮이 움트는 시간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텃밭에 떨어진 밤을 줍기 위한 채비에 나선다. 구제 옷 가게에서 산 회색 폴리에스테르 잠바를 꺼내 입으신다. 손에는 목장갑을, 발에는 정강이까지 오는 장화를 신으신다. 모자는 필수다. 커다란, 가장 튼튼해 보이는 비닐봉지 하나를 챙기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에 든 것은 군인에게 총칼과도 같은 등산용 지팡이.
삼십 분쯤 후,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비닐봉지 안에는 밤이 한가득하다. 아버지가 밤을 주워 오신 첫째 날엔 그야말로 환호가 터졌다. 셋째 날까지도 축제였다. 만일 우리가 다람쥐였더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아니 다람쥐가 아니더라도 윤기 나는 탱글탱글한 밤알이 바구니에 넘칠 때면 우리의 기쁨도 찰랑찰랑 빛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냉동실이 밤으로 포화할 즈음, 기쁨은 묵은 밤처럼 쪼글쪼글해졌다.
엄마의 시름이 깊어졌다. 밤 까다가 손가락 관절 다 망가지겠다며 아버지에게 밤을 그만 주워오라고 했다. 나는 나대로 잔소리를 했다. “아빠 때문에 다람쥐, 청설모가 굶어 죽겠어요. 다람쥐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그만 양보하세요.” 제법 그럴듯한 인류애를 핑계 삼아 아버지의 밤 줍기를 말렸다.
아버지의 밤사랑은 도가 지나쳤다. 우리 아버지가 원래 저렇게 욕심이 많은 분이었나 싶었다. 아버지는 조금 벌고, 조금 먹는 게 이상적인 삶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일곱 남매의 맏이였다. 호랑이 같은 할아버지 밑에서 순종적으로 살아왔다. 재산을 불릴 줄도 모르셨다. 물욕이 없었다. 처음 보는 아버지의 욕망이 낯설었다.
“아빠, 왜 그렇게 밤은 많이 주워요?”
“재미있으니까 줍지. 아침에 가보면 텃밭에 밤이 쫘악 깔려있는 거야.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지... 밤에 잘 때도 생각나”
그날은 휴무였다. 아버지가 그렇게 재밌다는 밤 줍기를 나도 한 번 해볼 요량이었다. 텃밭에 떨어진 밤 줍기는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요기도 밤, 저기도 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미처 풀을 잡지 못한 풀숲에 있었다. 풀이 키만큼 자랐다. 지팡이로 헤쳐야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막 한 발을 내딛는데, 아버지가 말렸다.
“너는 텃밭에 떨어진 밤이나 주워, 풀숲은 아버지가 주을 테니..."
"나도 갈게요"
"아냐, 넌 그냥 거기 가만히 있어."
그래도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버지가 화를 내시며 말했다.
"풀숲은 잘 안 보여서 밤가시에 찔려. 뱀도 있을 수도 있고..."
그 순간, 나는 아버지에게 열두 살 어린아이가 되었다. 험한 곳은 가지 마라. 다치면 안 된다. 그냥 편하게 살아라.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던 아버지의 잔소리가 오십 둘 중년이 된 딸에게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그냥 편하게 살라는 아버지. 위험한 곳은 가지 말라는 아버지. 순간 가슴이 따끔거렸다. 아버지의 사랑은 내게 밤 가시였다.
문득 머릿속에 웃픈 일러스트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밤 가시로 무장한 아버지, 그 안에서 토실토실 얼굴을 맞댄 삼 남매. 우리가 반짝이는 밤알 같은 얼굴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건, 그 밤송이 속에서 우리를 지켜준 아버지 덕이었다.
여전히 아버지에게 나는 거친 품 속에 있는 마알간 밤송이 었다.
한동안 우리 집의 밤(夜)은 아버지의 밤(栗)으로 반짝일 것이다. 부디 아버지의 남은 생이 저 산의 밤처럼, 달고 고소하게 익어가기를. 오래오래 계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