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확장과 영감의 원천으로써의 책임감
"그러면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팀장님께 또 당했다. 팀장님은 현존하는 최연소 팀장으로 그에 걸맞게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남다르다. 팀장님의 질문 패턴을 분석하여 예상 질문에 맞게 놓치는 것 없이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팀장님의 변화구에 속절없이 당황했다.
"그 부분을 보완해서 다시 보고 하세요"
재보고 엔딩이 익숙하지만 이번에는 좀 아쉬운 날이다.
'팀장님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학창 시절 공부 잘하는 친구들의 특별함을 생각했을 때는 지독한 성실함과 남들보다 조금 더 뛰어난 두뇌로 그들의 월등함을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 팀장님 능력의 비법에 대해서는 그런 것들만으로는 충분히 파악이 안 됐다. 왜냐하면 회사에는 성실하고 명석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회사의 흔남 흔녀들과 다르게 구별되는 차이점을 찾아야 했다.
팀장님을 끈질기게 관찰한 결과, 나와 구별되는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는 팀장님에게도 상사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 상사가 사장님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보고를 잘못해도 팀장님께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는 정도이지만 (물론 나의 직급에서 겨우 감당하는 수준이다) 팀장님은 사장님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순간 팀장 자질 자체가 의심받아 자리가 위태해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당연히 사장님의 질문 수준은 예상을 뛰어넘을 때가 있어 사전에 철저하게 고민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을 적용해 보면 사장님의 질문 수준에 따라 팀장님의 질문 수준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단련된 팀장님들은 팀원들을 뛰어넘는 사람이 되며, 이것이 직급이 사람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내용은 팀원과 팀장의 차이점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우리 팀장님이 다른 팀장님과 구별된다는 점은 설명하지 못한다. 그 차이점에 대한 실마리는 안타깝게도 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었다.
'팀장님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최초의 질문을 조금 더 솔직하게 바꿔보면 아래와 같다.
'저렇게까지 생각해야 하나?'
팀장님의 생각은 상당한 책임감에 기반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팀장님은 정말 일에 진심이었고 오너인 것처럼 일을 하고 있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회사가 잘못되더라도 회사원들은 직장을 잃겠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회사원은 회사원일 뿐인데 높은 수준의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팀장님이 놀라웠다.
그런데 그 책임감 때문에 생각의 수준이 높았던 것이었다. 팀장님은 투자안을 검토한다고 해도 단순 업무 처리 관점이나 단기적인 승진을 위한 성과 창출을 염두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비가 내 돈이고, 나로 인해 회사의 미래가 바뀐다는 생각으로 업무에 접근한다. 이렇다 보니 장기적이고 다각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강화된 것이다.
이렇듯 책임감은 생각의 깊이를 결정한다. 다른 말로 하면 생각을 단련시키고 싶으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쉽진 않다. 나도 책임감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실제 일의 결과에 대해 책임질 게 없다고 하더라도 책임감이라는 태도를 가지게 되자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확실히 생각할게 많아졌다는 뜻이다. 생각하는 일은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에 같은 회사일을 하는데도 더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을 생각을 단련시키는 기회로 삼아 계속 부딪혀 보고 있다.
부담스러웠던 책임감이, 사고 확장과 영감의 원천이 되어가는 나날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