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의 장애물 : 상대방 눈치 보기
"협회에 전화했니?"
당연히 안 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못한 거다. 지금은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봄직한 단어인 전화 공포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시절 주요 업무는 협회에 회사와 관련된 자료를 받아서 정리하는 것이었다. 이미 메일로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렇게 여유가 넘치는 상황이 아니고 부탁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빠른 자료 수취를 위해서는 전화 연락이 필요한 상황을 마주하곤 했다. 사실 나는 자료를 늦게 받아도 괜찮은데 상사는 그렇지 않으니까 말이다. 신입사원으로서 난관 중 하나가 기획서 작성이 아닌 전화 하고 받기 업무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스스로가 작게만 느껴졌다. 전화 그게 뭐라고.
사실, 예견된 상황이었다. 학창 시절 배달앱이 없었기 때문에 전화로만 배달 주문을 할 수 있었는데 예상 가능하겠지만 전화 주문을 못했다. 친구가 대신하거나 짧은 시간에 내적 갈등과 저항감을 뚫어 내면서 겨우 전화 주문을 하곤 했다.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인생을 사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비슷하게는 대학교 때 과제 발표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 과목 선정을 교묘하게 하거나 어쩔 수 없이 조별 과제가 있는 수업을 듣더라도 조에서는 발표 이외의 업무를 담당해 왔다. 과제 발표를 피해서 학점을 채우고 이제는 취업하을 하려니 면접 관문이 남아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떨리고 고통스럽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면접의 난관을 뚫고 취업을 했더니 이제는 전화를 하고 여러 부서와 소통하면서 지내야 하는 반복되는 난관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전화는 하이라이트일 뿐 타 부서 사람들과 메신저를 하는 것도 힘겨웠다. 한 번은 업무 때문에 팀 내 선임 및 팀원과 함께 내 모니터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다른 부서 사람에게 메신저가 왔다. 메신저 내용을 먼저 처리하라고 해서 메신저에 응답을 하려는데 평소처럼 나는 메신저에 대화 내용을 썼다 지웠다 계속 고민하면서 대화를 못 끝내고 있었다. 그걸 보던 팀원이 한 마디 했다.
"정신병 있으세요?"
이 충격 요법이 효과가 있었다. 물론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맞다는 현실을 인식하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반복되는 굴레를 끊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인생을 살면서 이 굴레가 더 날카로워지고 옥죄어 온 다는 것. 즉 문제 난이도가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전화 주문의 경우 내 돈을 쓰는 행위이고 대학교 수업도 내 등록금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직장은 내 돈을 내는 것도 아니고, 안 쓰는 것도 아닌 회사에게서 돈을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요구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다가는 여기에 지나치게 에너지를 쏟게 되어 다른 업무에도 영향을 끼칠 것 같았다.
예전부터 발표도 잘하고 가게에 들어가서도 종업원 분들이랑 말을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대단하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안 될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의 전제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소심하게 태어났고 그 친구들은 외향적인 성격을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그런 활동들이 나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것이다. 즉 이 분야에 있어 나와 친구들은 시작점이 다르다. 슬프게 들릴 수도 있으나 나는 아 왜 안 될까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훨씬 발전적이고 희망적인 사고이다. 시작점이 다를 뿐이지 친구들과의 비교가 아닌 나의 인생만 놓고 보면 연습을 통해서 충분히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신경도 안 써도 되는 부분을 나는 의도적으로 연습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힘겹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 다른 분야에서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각자 삶의 무게가 다를 뿐이다. 그리하여 나에게 집중하여 소심함에서 비롯되는 업무상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사람들과의 전화와 메신저가 어려운 것일까. 나를 돌이켜 보니 대면으로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은근히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화할 때 사람들의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있으면 내가 말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초조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실시간으로 머리를 굴려가며 말을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래서 차분하게 말하는 것이 조금 어려울 때가 있다. 종합해 보면 나는 전화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나의 의사를 전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상대방의 기분을 더 중요시하다 보니 요점이 흐려지고 대화의 두려움이 생겼던 것이다. 사실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말 그대로 나에게는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대화의 과정에서 설득도 경청도 때로는 논쟁까지도 필요하다. 이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반응이 아니라 조금 더 명확하게 나의 의견을 정리하는 데 집중을 하다 보면 전화를 넘어서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조금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나에게 집중하여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