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 뜨는 게 두려울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으므로, 나는 매 순간 잠자기만을 소망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잠이 들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으니까. 잠자는 시간이 제일 좋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 하루가 밝았구나... 일어나자마자 서둘러 마스크를 하고 집 밖으로 나서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는 게 전부였다. 나는 낮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서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간은 아주 아주 느린 속도로 기어갔다. 좋은 시간은 빨리 가고, 지루한 시간은 느리게 가는, 잔인한 시간의 법칙이 이번에도 너무 정확하게 적용됐다.
지루한 시간보다 더 괴로운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좀비처럼 살고 있다는 거였다.의욕이라곤 1도 없는 무기력의 시간, 무기력은 중력처럼 나를 잡아당겨 주저앉히곤, 그냥 잠이나 쳐 자라라는 듯 끝없는 잠 속으로 떠밀었다. 더욱 괴로운 것은 그렇게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 듯 잠을 잘 수 있다가도 불현듯 언제 그랬냐는 듯 불면이 찾아오는 거였다. 이번엔 뜬 눈으로 온 밤을 꼴딱 새우며 괴로운 새벽을 마주하는 날이 지속됐다.
이런 고통스러운 감각들과 더럽게 무기력하고 더없이 불행한 시간들은 결코 내 인생에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제는 더 이상, 내게 행복한 시간들은 오지 않는 걸까. 나는 이미 불행에 너무 깊게 발을 들인 것만 같았다. 정신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작고 소중한 노란색 수면유도제에 의지해서 규칙적인 밤을 만들어가려 노력했다. 다행히 약은 효과가 있어서 다시 나는 끝없는 잠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생활을 몇 개월 간 지속했고, 빨리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도 버렸다. 생각의 변화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긴 터널 속 어딘가, 춥고 캄캄한 공간에 갇혀 있는데, 나가는 길도 모를뿐더러 이 공간엔 출구가 없다는 게 너무나 확실해서 공포스러웠다. 아주 길고 깊은 터널에 갇힌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낙관적인 변화는 아예 없을 거라고 생각되던 어느 날, 가슴속에 스며들던 빛 한 줄기는 명상 중에 찾아왔다. 릴랙스 요가명상 수업을 하던 날이었고, 수강생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요가 클래스, 바람이 부는 금요일 밤이었다. 릴랙스 요가 명상 수업은 다른 수업보다 수련의 강도가 낮고,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며 긴 호흡을 이어간다. 그리고 짧은 명상이 더해진다. 명상이 끝난 후 선생님께선, 수련생들에게 지금의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해 보라고 하셨다. '평온' '휴식' '감사' '힐링' 같은 긍정적인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내내 '끝'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왜인지 '끝'이란 단어가 계속 떠올랐다. 구체적인 감정은 알 수 없었지만, '끝'에 대한 생각에 계속 머물렀다.
끝의 감정
그때 내가 느낀 끝의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젠 정말 다 끝이다'라는 느낌? '모든 건 끝났다'라는 체념? '내 인생은 끝났어'라는 부정? 아니다. 내가 느낀 끝의 이야기는 다행히도 긍정의 것이었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에도 '끝'은 있다'라는 진정한 끝의 의미에 대해 어렴풋이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길고 긴 무서운 터널에, 어딘가 끝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였다고 해야 할까. 그 내밀한 감정들을 다 설명할 수 없고 다 알 수도 없지만, 내 안엔 변화가 일었다.
'끝의 감정'은 끝에서 다시 살아가 보자라고, '끝나지 않는 것 따윈 없다'라고 조용히 나를 깨워냈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것엔 끝이 있다는 걸 다시 믿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