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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orsense Nov 08. 2019

파리가 나를 불렀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모이는 곳

왜 글로 쓰는 첫 여행지가 파리인가?

첫 여행지로 글 쓰는 장소가 파리라니... 정말 클리셰 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파리는 마치 몽유병에 걸려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기듯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사랑에 빠진 여행자들 뿐만 아니라 심취해 있는 예술가, 디자이너, 파티셰, 셰프 등등..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그런 장소이거나 파리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장소인 것 같다. 나도 그 제정신이 아닌 사람 중에 하나였고 이렇게 파리를 첫 여행지로 쓰게 되있다. 



왜 첫 유럽 여행지 중 하나로 파리를 선택했나?
Orangerie Museum, France, 2007

나는 예술학부 그것도 서양화과 학생이었다. 사실 예술에 대한 무지한 수준을 말해보자면 일반인보다 못할 수도 있는 그런 예대 학생이었다.(지금은 예술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일반인인척 아니 일반인이다.) 그래도 나름 미대생이라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로 파리를 넣었다. 주목적은 미술관 관람과 에펠탑 그리고 예술가의 거리인 몽마르트르 언덕 오르기가 다였다. 

처음에 갔을 때는 많이 걷고 많이 돌아다니고 미술관에서 작품도 실컷 보고 참 좋았다. 특히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던 모네의 ‘수련’ 시리즈를 보며 전시장 벽의 반을 휘감을 정도로 큰 캔버스에 부드럽게 압도당하며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꼭 가봐야 할 곳은 맞다. 그리고 그냥 센 강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길고 짧은 다리를 지나면서 딱딱한 바게트 하나 물고 돌아다녀도 누구 하나 이상하다고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 또다시 파리에 갔나?
@unsplash

시작이 언제였는지 어떻게 시작된 건지 기억이 정확히 나진 않지만,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한국계 프랑스인이 이야기의 주제이다. 내가 기억나는 건 미구엘이라는 이름뿐 사실 본명도 잘 모르고 소르본 대학에 다니고 있는 나보다 2~3살 연상이고 파리에 살고 있다는 게 그의 신상의 전부였다. 그리고 수달스러운 외모와 흰 피부에 키가 190cm의 장신이었다.(사진으로만 봐서 정확 치는 않지만 정말 큰 키가 아까울 정도로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건 확실히 기억한다.) 

그와 나는 페이스북을 뿐만 아니라 스카이프를 통해 장시간 통화를 나눌 정도로 친했다. 어쩌면 그는 나를 한국어 연습을 위한 언어교환 상대 정도로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화술과 이야기의 방향성은 20대의 나로서는 썸(thing) 이상의 다정한 속삭임 같았다.

프랑스어가 모국어지만 영어와 한국말도 하고 한자도 이해하고 있는 지성미를 뽐내기 위해 나에게 내 이름과 같은 소리가 들어간 한자표현을 보낸다던가, 생전 처음 “당신은 와인 같은 여자예요. 와인은 성숙해질수록 더 가치 있고 맛이 좋아지잖아요.” 이런 말을 나에게 건네면서 마음속에 대 진동을 일으켰다. 나는 연애감정에 완전히 사로잡혔고 그의 마음이 나와 같은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좋아하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을 때 ‘그렇다고, 당신은 정말 특별한 여자다.’라고 말해주었던 게 기억이 난다. 

이런 감성에 젖어 지인 중에 키 큰 사람이 있을 때 키를 물어보고 혼자 실제 그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사이를 정의하는 말들은 없었다. 그냥 서로 호감이 있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 그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와 대화하는 약 3년의 시간 동안 자발적, 타의적인 솔로 생활을 이어갔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열정 페이를 받으며 회사 생활을 함에도 자존감은 나름 상급인 20대 중반이었기 때문에 그땐 남자 친구가 없어도 크게 마음의 동요가 없었다.

@unsplash

내가 밴쿠버로 어학연수를 간다고 했을 때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절친처럼 힘을 실어주었고, 자주는 아니지만 여전히 통화를 종종 이어갔다. 그러나 그는 밴쿠버에서 생활할 때 가끔 이상한 요구를 했었고 그런 걸 들어주기엔 난 좀 많이 순진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남자 친구가 될 수 없는 사람임을 직감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생애 처음으로 외국인 남자 친구를 사귀었지만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정도일 뿐이었다. 그 친구와는 완벽히 사랑할 수는 없었고 결국 끝을 냈다. 

어느 날은 친구한테 이런 상황을 솔직하게 상담을 하기도 했는데, 그 친구는 “지금 남자 친구와는 별개로 네가 메신저로 썸 타는 남자는 나쁜 남자일 것이다. 나도 그런 비슷한 경험이 있고 실제로 만나고 사귀기도 했는데, 실상은 엉망진창인 사람이어서 얼마 되지 않아 헤어졌다. 이런 관계로 인해 상처 받을 수 있고 진정한 사랑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라고 충고해주었다. 그러나 그걸 알고 있음에도 한 번도 실제로 보지 못했던 3년간 대화하던 사람이 실존하는 사람인지? 혹은 가정 있는 유부남인지? 파헤쳐보고 직접 얘기하고 확인하고 싶었다. (이 놈의 호기심이 문제였다.)



그래서 두 번째 파리는 로맨틱한 곳이었나?
@unsplash

굳이 안 가도 되었을 파리 일정을 약 3일 정도 계획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파리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그에게  ‘드디어 당신을 만나러 가기로 결심을 했다고. 내가 가겠으니 우리는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여러 기항지를 거쳐 막상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사실 이미 이런 상황을 예감하고 있었다.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파리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서  ‘내가 파리에 있을 때까지 당신의 연락을 기다리겠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무거운 마음으로 몽마르트르 언덕을 향해 걸었다. 막상 몽마르트르 언덕 잔디에 앉아 책을 읽고 ‘멍상(멍~)’을 하다 보니, ‘왜 내가 여기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만날 수도 없고 연락도 안 되는 남자의 연락을 기다려야 하나?’하고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난, ‘내가 미련한 짓을 했구나... 진짜 미쳤구나... 말도 안 돼 는 환상 속의 남자를 찾아 다른 나라에도 가볼 수 있는 기회를 날리고 이렇게 파리에 다시 와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unsplash

그날 밤엔 진짜 처음으로 호스텔에 같이 묵던 사람들과 와인을 잔뜩 마시고 어지러움증을 호소하며 술해 취해 침대 위에 널브러졌다. 그날 밤, 그 사람이 스카이프로 전화를 했지만 받지 못했고, 얼마지나지 않은 시간에 메신저로 파리에 있는 것이 맞는지? 진짜 실존인물인지 등을 캐물어봤다. 그러나 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주지 않았고 결국엔 그와의 대화를 끝내버리고 메신저 목록에서 차단했다. 

그리고 파리에서 떠나기 전 며칠 후에 그에게서 메일이 한통 왔다. 그 메일에는 내가 포르투갈에 가는 걸 알고 어디 가면 좋을지에 대한 (나에게는 불필요한)정보와 자신은 어떤 사정에 의해 현재 파리에 살고있지 않다는 말 그리고 나를 낙담시킨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이미 예상한 듯 미안하다며 잘 살라는 식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한 번도 얼굴도 못 본 혼자만의 연애는 끝이 났다. 정말 무슨정신으로 파리까지 날아갔었는지 제정신이 아니었던것 같다.

여행을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약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던 것 같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출장차 한국에 잠시 와 있는데 한강 다리를 지나가는 전철에 타고 있으니 갑자기 내가 생각나서 연락을 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난 그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나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였다. 

웃긴 건, 내가 무려 5년 만에 그의 이메일에 답장을 보냈다는 것. 뭔가를 바라거나 그를 잊지 못해서는 아니지만 그 사람이 여전히 실존하는 사람인지가 미제 사건처럼 머릿속에 파일링 되어 있었고 그걸 정리해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야 팩트는 그는 나에게는 사이버 썸녀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기에 나에게는 그는 무익한 존재이기 때문이기에 내가 그의 메일에 답장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과 그가 내 메일에 답장 안 한 것이 다행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파리는 나에게는 로맨틱한 기억이 없는 곳, 두 번 다녀온 여행지. 나에게 그 이상의 의미는 아니게 되었다.



미드나잇 인 파리
Paris, France, 2012

오랜동안 묵혀두고 꺼내보지 않았던 기억 상자를 열어보고 나니 내가 겪었던 파리의 기억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와 같은 돌아갈 수 없는 시절과 추억을 갈망하는 허상의 도시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갔던 파리의 기억은 사진으로만 기억할 뿐 어떻게 느꼈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고, 두 번째 갔던 파리 역시 뭔가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해 실망감으로 마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같던 그곳과 그 시간은 거짓말이 아니며 실상이 있었고, 허깨비를 쫓던 상황을 털어버리고 나는 '밟으면 또다시 돌아오게 만든다.'는 포앵 제로를 또다시 밟고 왔다.  



그래서 또 가고 싶을까?
@unsplash

다시 파리에 가고 싶은 마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반반이다. 꼭 다시 가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0%이다. 그러나 다른 여행의 기항지로 잠시 머무를 때 (파리 인 항공권이 워낙 저렴한 게 많으니까) 내가 좋아하던 에펠탑 근처에서 에펠탑의 낮과 밤을 바라보는 것과 거리의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는 일,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서 모네 그림을 한번 더 보고 오는 경험은 여러 번을 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너무 나에게는 좋은 기억이어서 남편과 가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프랑스라는 나라를 모두 탐방하지 못했으니 기회가 닿는다면 분명 파리는 다시 가게 될 도시는 맞는 것 같다.

예술을 사랑한다면 혹은 지금 사랑하고 있다면 파리에 직접 갔을 때 그 모습에 실망할지는 몰라도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이라는 것에 한 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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