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해 Jan 12. 2024

사람들 설움을 알게 된

당신이 서러울 때, 내가 당신을 위로해주려고


 “애기씨도, 아, 아니 최참판댁 그분도 눈물을 흘리시던데, 누가 그거를 생각할 수나 있었겄나. 길상이가 있이니 말하기는 안된 일이지만 나는 세상에 그분 눈에 눈물이 있다는 건 참말 이제 생각해본 일이 없었구마, 하도 이상해서 아마 애기를 낳고 아이 어무니가 되고 보니 사람들 설움을 알게 된 기이 아닌가 하고.”

토지 2부4권 248쪽에서 인용/ 마로니에 북스     


 최참판 댁 손녀 최서희도 이제 다른 사람들의 설움을 알게 된거 같다는 말이다. 월선이 죽고, 찾아온 서희가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은 서희가 애기를 낳고 아이 어머니가 되고 보니 다른 사람들의 설움도 알게 된거 같다고 말한다.     


 설움이란 서럽게 느껴지는 마음이다.

 엄마에게 야단맞은 아이가 설움에 겨워 운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들은 부모 잃은 설움에 운다.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도 설움에 운다.

 다른 사람이 서러움에 우는 모습을 보면 내 설움이 떠올라 같이 울기도 한다. 남이 서러워할 때 자기 설움까지 함께 쏟아져 더 서러운 것이다.


 이 설움 저 설움 해도 배고픈 설움이 제일이라는 속담도 있고, 병들어 보아야 설움을 안다는 말도 있다. 과부 설움을 홀아비가 안다는 말도 있고, 늙으면 설움이 많아진다고도 한다.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참느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본 적이 있는가?      


 자기가 지극한 서러움의 감정을 느껴본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의 설움을 알게 된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서러움도 알게 되어야 비로소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생노병사의 길을 걸어가는 인생살이 자체가 서러운 행로인지도 모른다.


 그 길을 가면서 서러운 내가 설움에 겨워하는 당신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더러는 내가 당신을 위로하고, 더러는 당신이 나를 위로하며 걸어간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서로를 바라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인간 아닌가."  인상파 화가 에드가르 드가가 한말이다.


 당신이 서러울 때,내가 당신을 위로해 주려고.

내가 서러울 때,  당신이 나를 위로해 주니까.

이전 09화 인정머리 없는 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