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사랑은 끝이 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작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그 과정을 되짚으면서도 정작 그 끝은 외면하곤 하지요.
더는 사랑이 아니라고, 이제는 놓아야겠다고 느끼면서도 상실감과 무기력, 설명할 수 없는 갈증과 혼란이 이어졌습니다.
어쩌면 믿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로맨스 지수가 부족한데 연애소설이나 써볼까?" 하고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사실은 사랑했던 순간들을 잊고 싶지 않아서, 정확히 말하면, 잃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릅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청춘과 작별할 시간이라는 현실과 여전히 청춘의 에너지를 품고 싶은 내가 더는 공존할 수 없다는 자각. 소설 ‘그때, 거기, 우리’는 그 사이에서 써 내려간 이야기였습니다.
맨해튼 서점에서의 첫 만남,
뉴햄프셔의 깊은 가을,
크루즈를 만난 새벽의 조깅,
덕수궁 돌담길의 봄,
두물머리 산책,
바르셀로나의 여름,
조지 오웰의 광장,
제주올레의 시작, 말미오름
성산포 성당 앞에서 바라본 우도의 풍경,
그리고 그 시절 다시 가서 만나고 싶은 뉴욕의 가을까지.
이 모든 순간들은, 결국 내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를 온전히 담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이었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장소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았던 어떤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용눈이오름에서 삼각대를 세우고 찍은 두 그림자처럼, 나는 내 과거의 모습들과 함께 서 있었고, 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시절을 충분히 사랑했기에, 이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이 이야기를 통해 나는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이 글을 덮으면, 저는 또 다른 일을 시작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전에, 잠시 멈춰서 말하고 싶습니다.
그 시절의 나를, 그리고 그때 거기 함께였던 모든 순간들을, 충분히 사랑했다고. 그리고 그 시절의 나를 사랑해 준 당신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그래서 지금, 남은 나의 시간들에 감사하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고.
이야기는 끝났지만, 우리의 계절은 계속됩니다.
아직 걷지 않은 길 위에서, 다시 한번 설렘과 함께.
‘그때, 거기, 우리’ 그리고 ‘이제, 여기, 나’에 이를 테니까요.
여러분의 사랑도, 일상도 안녕하길 바랍니다.
— 2025년 뜨거운 여름올레를 걸으며, 작가 강마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