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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경 Dec 19. 2023

우당탕탕 튜닝 와장창창 순정

기성품(좌)과 커스텀(우) 사이의 간극


우당탕탕 튜닝 와장창창 순정




파네라이가 갖고 싶다. 파네라이 루미노르(Luminor) 모델이 가진 특유의 크라운 잠금이 달린 시계를 갖고 싶다. 그러나 루미노르의 가격은 중고로 산다고 해도 600만 원 안팎이다. 이토록 큰 지출을 하기에는 나의 생활 수준이 너무 낮다. 나중에 오버홀 주기가 돌아올 때도 그 가격을 감당하지 못할 게 뻔하다. 혹시 당신도 그러한가. 갖고 싶은 시계가 있지만, 갖지 못하는.


이런 당신과 나를 위해 시계의 커스텀 부품을 전문적으로 하는 시장이 있다. 세이코(Seiko)의 초인기 히트작이었던 SKX 시리즈는, 시리즈가 단종되었음에도 커스텀 부품 업체들이 이미 하나의 산업이 되었을 정도다. 그렇다. 매뉴팩처(manufacturer)에서 만든 게 아닌 이상, 고만고만한 시계는 어차피 부품의 조립이다. 그렇다면 원하는 부품들을 사서 조립해 보면 어떨까!


이렇듯 커스텀은 소비자(customer)가 가진 특정한 요구를 제품에 맞게 조정하는 것을 일컫는다. 커스텀을 위해서는 해당 제품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 시분침 부품은 내가 커스텀하려는 무브먼트의 시분침과 호환되는가? 이 디버클 시계줄은 버클의 핀을 사용할 수 있게 여분의 구멍이 뚫려있는가? 이 다이얼 부품은 내가 원하는 케이스 및 무브먼트와 호환되는가?


커스텀을 누가 행하는지도 문제다. 특정 제품에 대한 이해가 남들보다 뛰어난 특정 전문가는 이러한 커스텀을 남들보다 뛰어나게 해낸다. 조립과 조립 과정에서 나타나는 유격과 솔기를 모두 다듬어 내는 장인의 솜씨는, 애초에 커스텀이 아닌 것처럼 새로운 부품과 기존의 부품을 이음매 없이 딱 맞춘다. 특히 시계 같은 제품은 일반 소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라 전문가의 역량이 더욱 빛이 난다.


그러나 소비자인 우리는 굳이 직접 커스텀을 택한다. 전문가의 지식과 실력에 돈을 지불하기에는 좀 아깝기도 하고, 어떻게 유튜브 좀 보고 블로그 좀 보면 나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혼자 해낼 수 있긴 하다. 내가 원하는 것처럼 부품과 부품이 맞물리고 작동도 문제없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티가 너무 난다는 게, 문제라면 가장 큰 문제다. 어딘가 삐걱거리는 유격, 조금 틀어져있는 크라운, 덜렁거리는 다이얼을 보고 있자면 새삼 꽉 맞물리는 기존의 제품이 그리워진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데, 아무리 튜닝의 끝에서 순정을 그리워해도 커스텀이 비가역적이다. 조금 부족하지만 옹골지고 예뻤던 순정은 떠나갔고 내 손에는 나사가 빠진 채 덜렁거리는 시계와 커스텀의 잔해만이 동그마니 놓여있다.


심지어 이런 커스텀 부품은 한 푼 두 푼 하지 않는다. 앞선 파네라이 루미노르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아무리 이것을 커스텀으로 만든다고 해도 케이스 값, 다이얼 값, 무브먼트 값, 시계줄 값, 거기다가 다이얼에 들어가는 커스텀이나 기타 액세서리를 신경 쓰다 보면 웬만한 스위스 시계 가격 하나는 나온다. 심지어 이를 전문가에게 맡긴다면 비용은 더 든다. 여기서 소비자는 규모의 경제를 떠올린다. 한 명의 가내 수공업자인 내가 부품들을 하나씩 사서 생산하는 시계는, 절대로 수십 수백 명이 뽑아내는 시계와 가격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기성품은 그렇기에 대체로 수공예품 보다 저렴한 것이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다. 이 말을 나는 다음과 같이 받아들인다. 기성품이 아무리 못나 보이더라도, 커스텀한 제품이 갖지 못하는 깔끔함과 깨끗함, 그리고 상대적인 완전함이 있다고. 그걸 알게 된 사람들이 결국 한탄하든 망가진 커스텀 제품을 앞에 두고 기성품을 다시 구매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소득 수준을 떠올리며 파네라이 커스텀의 꿈을 접는다. 내가 가진 시계들이나 더 자글자글 긁으며 사용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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