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사진은 스펙앤소네(SPECHT&SOHNE)의 시계 모델명 SP0015. 작년 한 해 활약한 스위스 시계 제조사 티쏘(TISSOT)의 시계 PRX 35mm 컬렉션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껴만든 시계다. 인상적인 것은, 그들이 베낀 컬렉션에는 SP0015처럼 GMT 기능을 가진 제품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펙앤소네가 PRX를 베껴오는 과정에서 약간의 변형을 가하는 바람에 결론적으로는 인상적인 시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너무 그럴듯하고 충분히 매력적이어서 웃음이 다 나온다.
일단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와 해당 플랫폼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따라서 본 글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명백한 사실이 아니라, 내가 해당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얻은 인상, 시계 취미를 하며 들었던 풍문에 기반한 이야기임을 먼저 밝힌다.
나는 알리익스프레스를 자주 이용한다. 싼 값에 시계도, 시계줄도, 시계 관련 액세서리도 살 수 있어서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심지어 매년 한 두 번씩 큰 규모로 할인행사도 하는지라, 그때마다 눈여겨보던 시계를 사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한동안 드나들었던 시계 애호가 커뮤니티에는 이 할인 기간마다 어떤 시계를 샀는지 서로 얘기하는 글이 자주 올라오곤 했다.
여기서 판매되는 시계는 참 많다. 세계의 공장이라던 옛날의 명성이 아직 죽지 않아서인지 여전히 접근 가능한 가격의 시계가 눈에 띈다. 보통 알리익스프레스에 등록되는 시계는 같은 가격의 다른 브랜드 시계들보다(메이저브랜드와 마이크로브랜드 모두를 합쳐서) 대부분 조건이 좋은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제품과 가격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 회사가 디자인이나 마케팅에 대한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메이저브랜드와 마이크로브랜드의 제품의 디자인을 그대로 차용하기도 하고, 별도의 유통과정 없이 공장에서 직접 제작해 판매한다.
그렇기에 알리익스프레스의 시계들은 어느 판매자의 페이지를 살펴봐도 비슷비슷하다. 다들 비슷한 공장에서 만들어진 비슷한 케이스와 부품들을 짜깁기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각 판매자들끼리 다른 것이 있다면 아주 세세한 경우가 그렇다. 즉 이 판매자의 시계에 들어가는 무브먼트는 저 판매자의 것보다 조금 낫거나, 이 판매자의 시계는 날짜창이 다른 판매자와는 다르게 야광이거나, 혹은 이 판매자는 다른 판매자보다 좀 더 믿을만하다는 정도. 이런 디테일을 꼼꼼히 챙겨가며 적당한 값어치의 적당한 쓰임새의 시계를 산다.
알리익스프레스의 시계 중 대다수가 판매자 고유의 브랜드 이름을 시계에 표시한다. 즉 디자인은 어디서 따온 게 맞는데 시계 다이얼에 들어간 이름은 전혀 다르다. 그래도 짝퉁이라는 오명을 벗기는 어렵다. 시계의 디자인 특허가 인정되는 경우가 많지 않고, 국내법에 따르면 상표가 다르다면 소위 위조품이 아닌데도, 어쨌든 비슷한 시계를 만들었으니 누가 뭐래도 짝퉁 같다는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파는 시계 중 짝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상표가 다르니 짝퉁이 아니라는 둥 구구절절 설명할 바에야, 그냥 나도 그렇다 인정하고 넘어가게 된다. 애초에 브랜드를 앞세워 자랑할만한 시계도 아니고, 내가 쓰기에 쓸만한 정도의 시계니까.
그래서 그런지 암암리에 팬층도 있는 것 같다. 나만 해도 그중 하나고, 해외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런 중국의 그럴싸한 시계를 좋아하고, 나름 브랜드에 기반해 논평하기도 한다. 이런 알리익스프레스 기반의 시계들을 전문적으로 리뷰하는 국내외 유튜버들도 몇몇 존재한다.
위상 높은 몇몇 매뉴팩처(manufacturers)가 아닌 이상, 전 세계의 시계 업계가 중국에 생산을 외주화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대다수의 시계 회사들의 사업 모델은 중국에서 생산되는 부품, 혹은 완제품에 기대고 있다. 그러므로 브랜드의 위상만 떼어놓고 본다면 알리익스프레스의 시계는 꽤 아이러니한 매력이 있다. 오늘 확인한 SP0015처럼, 염가에 쓸만한 제품은 누구에게든 매력적일 수밖에 없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