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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경 Dec 05. 2023

나는 시계를 더 사지 못해 슬픈 짐승

시계 사진을 모아둔 나의 폴더이다. 근 3개월만에 8280개의 사진이 쌓였다.


나는 시계를 더 사지 못해 슬픈 짐승




나는 슬픈 짐승이라, 매번 다른 방법으로 이 뜻 모를 허기와 갈증을 채우려고 발버둥을 친다. 시계 생활에 입문한 지 올해 12월로 어언 4년, 나는 숱하게 것을 만나왔고, 지나왔다. 때로는 욕망에 사로잡혀 한동안 거지꼴을 못 면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과감히 이 손을 뿌리쳤다가도 금방 사로잡혀 또다시 거지꼴로 돌아가기도 하였다. 이 짐승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반드시 이 짐승을 길들여야 했다.


사고 싶은 시계에 비해 나의 자금 사정은 언제나 턱없이 적고 적었다. 나는 내 뜻 모를 내 욕망을 조절해야만 한다. 욕망을 줄이는 방법이 있으나 이는 항상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곧잘 이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속이곤 했다.


하나는 시계의 줄을 바꾸는 일이다. 시계줄을 사는 일은 시계를 사는 일보다 몇몇 부분에서 낫다. 우선 저렴할 확률이 높다. 알리익스프레스를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좋은 퀄리티의 시계줄이 얼마나 저렴할 수 있는지를 알았다. 그 좋은 퀄리티가 때로는 너무 좋아서, 대체 이 알리익스프레스 화면 너머에서는 어떤 착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섬뜩할 정도였다.


두 번째로 시계줄이 기존 시계의 인상을 확 바꾸어 준다는 것이다. 시계알만 시계고, 시계줄은 액세서리라는 말에 쉽게 동의가 되지 않는 이유는, 좋은 시계줄은 그만큼 시계를 더 좋게 가꾸어주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좋은 옷이 날개이듯이, 좋은 시계줄도 날개가 되곤 했다. 마지막으로 쓸모없이 시계의 수를 늘리지 않고도 위의 장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적어도 대부분의 시계줄은 시계 보다야 관리하기가 용이한 소모품이니까.


그러나 결국 공짜 시계줄은 없고 돈이 든다. 저렴한 탓인지 비싼 줄 모르고 돈을 쓰게 된다. 그제야 1만 원이 10번 모이면 10만 원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랑비에 옷 젖듯 써댄 돈은 크나큰 업보로 들이친다. 이 돈이면 시계 하나를 더 사지 싶은 후회는 덤이다. 양손에 수많은 시계줄을 껴안은 나는 폭싹 젖은 생쥐꼴로 빚더미에 앉는다.


돈이 들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나의 욕망을 관리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시계의 사진을 다운로드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이는 돈을 들이지 않고도 욕망을 속이는 방법이었다. 짐승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칠 때마다 던져주는 간식 정도는 되는 것이었다.


이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남의 사진을 도용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스마트폰에 고이고이 저장만 시켜놓는 것이니 그 누구도 나에게 비용을 묻지 않는다. 나는 새로 나온 시계를 소개해주는 사이트, 판매자들이 희귀한 시계를 올리는 중고 장터, 시계 관련 뉴스 등을 돌아다니며 시계 사진들을 수집한다. 이 모든 과정이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이 방법이 좋은 두 번째 이유는 좋은 시계 사진에 접근하기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관리에 있어서 시간과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시계 사진을 아무리 쌓아놓아도, 이 데이터 더미는 나에게 관리를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나의 폴더 안에 잠들어 있을 뿐이므로 오버홀도, 가죽크림을 발라줄 필요도 없다. 나는 심심할 때마다 폴더를 주욱 내려다보며 그것이 마치 나의 시계를 찍은 사진인양, 나의 컬렉션을 뿌듯하게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


1만 개 가까이 쌓여가는 시계 사진 폴더를 보자니, 내가 무슨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지 싶어 마음이 착잡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짓거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이것이 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는 이런 단순한 짓거리로 줄어들 만큼 나의 욕망도 단순했다는 것이다. 나는 울부짖던 나의 욕심이, 사실 굳이 시계를 사지 않아도 해결 가능한 욕망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싼 게 비지떡이다. 비싼 것은 이유가 없을 때도 있으나, 싼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러나 나는 저렴한 방법으로 나는 이 슬픈 짐승을 길들인다. 다행히도 이러한 요행이 나의 갈팡질팡하던 짐승을 효과적으로 달래준다. 나는 자기 자신보다 커다란 욕망 아래에서 발버둥 치는 짐승의 털을 쓰다듬는다. 나, 돈 없어, 이 시계 사면 나 이번달 완전 그지야, 하고 속삭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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