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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hadi Sep 27. 2022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


어릴 적 우리는 놀기에 얼마나 진심이었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소꿉놀이였다. 고운 빛깔과 매끄러운 모양의 소꿉놀이 세트가 없어도 우리는 충분히 즐거웠다.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금파리들을 열심히 모았다. 깨진 사기그릇도 훌륭했지만 멀쩡하게 버려진 사기그릇을 발견하는 날이면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환호성을 질렀다. 지극히 예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그릇들을 모아 모아 이슬 머금은 풀로 잘 닦는다. 흙먼지 붙은 사금파리들에서 반짝반짝 윤이 날 때까지. 그렇게 하나둘 모은 소중한 살림살이는 신나게 가지고 논 후 다음날을 위해 덤불 속에 꽁꽁 숨겨둔다. 그래도 혹여 누가 가져갈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포슬포슬 모래밥을 지어 한 그릇 담아둔다. 뜨거우니까 조심하라는 잔소리도 잊지 않는다. 어디선가 주워온 빨간 벽돌을 날카로운 돌로 살살 긁어내면 훌륭한 고춧가루가 된다. 풀을 뜯어다가 널찍한 바위에 두고 둥그런 돌로 쿵쿵 찧어 벽돌 고춧가루에 섞으면 그럴싸한 김치가 된다. 노란 동그라미에 하얀 꽃잎이 둥그렇게 둘러싼 계란꽃을 따 사금파리에 올려주면 계란 프라이가 되고, 정체 모를 검은색 열매를 살살 으깨면 포도잼이 된다. 가짜 포도잼을 풀과 섞고 예쁜 꽃을 얹어 멋진 요리를 완성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손끝과 옷 군데군데에 검은 물이 들고 손톱 밑에 흙 알갱이들이 촘촘히 자리 잡는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차린 최고의 밥상이 앞에 있으니까.


계란꽃의 진짜 이름은 개망초다. 정체 모를 검은 열매는 미국 자리공의 열매다. 어릴 적 매일같이 만지던 열매의 이름이 참 낯설다. 모든 것이 재밌고 모든 순간에 열정적이던 어린 날의 나처럼. 하지만 그날의 행복감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마스다 미리의 <귀여움 견문록>을 보며 사방치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납작한 돌은 발로 차면 비교적 반듯하게 날아가지만 너무 납작하면 차기가 어렵고, 동그란 돌은 차기 쉽지만 굴러가서 잃어버릴지 모르기 때문에 사방치기에 적당한 돌멩이를 발견하는데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냥 되는 일은 없다. 사방치기 돌 하나 고르는데도 정성이 들어간다. 고르고 고른 사방치기 돌은 분명 제 역할을 톡톡히 하며 우리를 기쁘게 해 줄 것이다. 


나는 종종 유튜브에서 에어기타 영상을 찾아본다. 에어기타는 허공에 기타 없이 맨손으로 기타 치는 흉내를 내는 것이다. 쓸데없는 손장난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엄연히 국제 대회까지 있다. 최선을 다해 만들어낸 현란한 손동작은 흉내라는 말이 무색하게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만드느라 손끝을 검게 물들이고, 몇 개의 돌을 들어다 놨다 고민하며 최적의 사방치기 돌을 고르고, 허공에 현란한 손짓으로 기타 흉내를 내는 우리는 늘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고, 즐거웠다. 그 순간들은 쓸모와 상관없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빛바래지 않는다. 정성을 들인 일은 분명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반짝이는 힘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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