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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좋아해

by pahadi Feb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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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맘 먹고 망고를 샀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망고지만 값도 싸지 않고 관리와 손질이 번거로워 자주 사지는 않는다.


살 때는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기 위해 박스로 산다. 한 박스에 보통 8개에서 12개 정도가 들어있다. 덜 익은 망고를 후숙 시켜 먹는데 맛있게 익히기 위해서 꽤나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불이나 수건으로 덮어 어둡게 만들어 따뜻한 곳에 두고 슈가 스폿이 올라오는지 자주 살펴봐야 한다. 조금 지나치게 말하면 메주 띄우기 정도의 정성이 필요하달까. (당연히 메주는 안 띄워봤습니다만) 내가 먹기 위해서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면 슈가 스폿이 하나, 둘 올라오는데 이게 또 문제다. 박스 안에 옹기종기 모인 망고들이 내 마음에 쏙 들게 “제가 첫 번째로 갈게요.”, “그다음은 접니다.”라며 순서를 정해 슈가 스폿을 올려주면 좋겠지만 당연히 그런 일은 없다. 우수수 슈가 스폿이 올라온 망고들을 이제 왕창 먹어야 한다. 이 시기를 놓쳐버리면 금방 물러버리기 때문에 아침 간식도 망고, 오후 간식도 망고, 저녁 식사 후에도 망고를 먹는 짧은 나날이 이어진다. (슈가 스폿이 올라온 망고를 냉장고에 넣으면 고구마가 되어버리고 만다.) 망고를 적당히 익히는 것도 스트레스, 적당히 익은 망고를 제 때 소비하는 것도 스트레스. 게다가 부지런히 익혀 애써 잘라도 과육보다 씨가 큰 배신의 과일이여. 여러모로 망고는 나에게 선뜻 사랑할 수 없는 과일이다. (참고로 저도 남이 까주는 망고는 참 좋아합니다.)


하지만 너무 일찍 나무의 품을 떠나 이역만리타국까지 건너와, 가짜 온기에 자신을 속이며 초록에서 노랑까지 인고와 번뇌의 시간을 지나온 안쓰러운 망고를 마냥 미워할 수도 없다. 입맛을 잃은 우리 아이를 몇 번이나 구해준 고마운 과일이기도 하고. 결국 나와 망고는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거리에서 서로를 측은히 여기는 사이인 것이다. (망고도 애 키우느라 전전긍긍하는 를 좀 안쓰럽게 여기겠죠?)


그런 망고와 오랜만에 만났다. 할머니 댁에서 허겁지겁 애플망고를 먹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약해져 살까 말까 하던 애플 망고를 2개 사 왔다. 내 주전공은 무지개 망고로 애플망고는 낯설었지만 망고가 뭐 다 같은 망고 아니겠는가. 비싼 과일이니 예쁘게 깎은 애플망고는 아이 입에만 쏙 들어갈 예정이다. 어디를 노려볼까. 사과인 듯 망고인 듯 낯선 애플망고를 요리조리 돌려보다가 용기를 내어 칼을 깊숙이 꽂는다. 아차!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깨닫는다. 칼이 빡빡하게 들어가는 걸 보니 아직 덜 익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칼집이 난  과일을 어쩌겠는가. 다음은 현실부정이다. 애플망고는 좀 다를 수도 있지. 괜찮을 거야. 가끔은 아닌 줄 알지만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제발 아이가 잘 먹어주었으면.


“준이야. 망고 먹어” 망고가 담긴 접시를 들고 태연한 척했지만 마음은 60점을 슬쩍 80점으로 고쳐놓은 시험지를 든 아이처럼 쿵쿵거렸다. 그냥 대충 이 고비가 넘어갔으면 간절히 바라본다.

“와! 망고다.”라고 소리치며 한달음에 달려온 아이는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대번에 말한다. “맛없어!”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지고 놀던 장난감으로 달려가 버린다.

이렇게 야속할 수가. 전전긍긍하던 마음이 용암이 되어 솟구친다.


“너 망고 좋아하는 거 아니야! 잘 익은 망고만 좋아하고 잘 안 익은 망고는 안 좋아하는 게 어떻게 좋아하는 마음이야? 망고가 맛있어도, 맛없어도, 예뻐도, 안 예뻐도, 노란색이어도 초록색이어도 한결같이 좋아해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 너 진짜 이제 망고 좋아하는 거 아니다! 아니면 ‘저는 잘 익어서 노랗고 슈가 스폿이 5개 정도 올라온 무지개 망고만 좋아해요’라고 말해야지. 응? 듣고 있는 거야?"


이건 진짜 다소곳하게 기다리고 있는 망고가 안쓰러워서 그러는 거지 전전긍긍한 마음을 들켜서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와 같은 신파도, 내 마음이 좁아서도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말하며 무안할 망고를 한 입 베어문다. ‘맛없기 하네…‘ 이건 맛없는 망고의 잘못인가. 성급하게 썬 나의 잘못인가. 맛있는 망고만 좋아하는 아이의 잘못인가 생각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그냥 인생이 이런 거지라며 무같은 망고를 우적우적 먹는다.


‘엄마는 네가 웃어도, 울어도 항상 너를 좋아한다고. 네가 입에 잔뜩 짜장을 묻혀도, 카레를 묻혀도 너를 좋아한다고. 네가 칠렐레 팔렐레 옷을 질질 끌고 다녀도 너를 좋아한다고. 네가 엄마가 정성껏 준비한 망고를 안 먹고! 어? 그래도 너를 좋아한다고! 엄마가 지금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따스한 눈빛으로 너를 보고 있잖아. 봐봐. 이런 게 바로 좋아한다는 거야. 쳇. 그런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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