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익숙함의 의미를 다시 깨닫는 것
인생의 1/3은 해외에서 보내기로 했다. 나의 버킷리스트였다. 아직 창창한 나이라, 인생의 1/3을 다 보내진 않았지만 거의 그렇게 살아왔다. 그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다. 생각해보면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미국, 레바논, 멕시코, 라오스, 캄보디아,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터키, 베트남, 필리핀, 몰디브, 중국......
수많은 나라, 수많은 도시를 넘나들며 나도 모르게 바뀐 생각이 있다. 그래도 내 나라, 내 집이 가장 좋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사실일 수도 있다. 아무리 집값, 물가가 올랐다 할지라도 이만큼 돈을 지불하고 내가 생각하는 만족감의 크기를 얻는 곳이 드물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나에게 대한민국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사람, 즐길거리, 볼거리가 풍부한 곳임은 틀림없다.
또 다른 노마드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나이들고 있다는거야"
인생의 1/3을 해외에서 보내기로 한 계획을 이렇게 바꾸었다. 대한민국을 기점으로 하고 원할때 나갔다 들어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봄과 가을은 한국, 여름엔 호주나 뉴질랜드 같은 남반구, 그리고 겨울엔 동남아시아~ 이런 셈이다.
처음 여행을 할 땐 그냥 떠나는 게 신이 났다. 마냥 들떴다.
거기서는 어떤 신기한 일이 벌어질까? 어떤 사람과 어떤 음식을 마주할까?
같은 음식을 먹어도 다른 나라에서 먹으면 더 맛이 났다. 라면을 먹어도 집에서 그냥 먹는 라면과 태국에서 먹는 라면의 맛은 비교할 수가 없다. 거기에 오랜 행군 중에 추위에 떨다 먹은 컵라면의 맛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평범한 것인데 익숙한 환경을 떠나 무언가를 하면 그게 더 특별해지는 현상이라고나 할까?
여행 중 얼른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거의 없었다. 다만, 한국에 돌아가면 이걸 해봐야겠다. 이렇게 해야지 같은 나름대로의 숙제와 자기반성?을 하고 온다. 그건, 그냥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다. 일상에서 잠시 놓고 있던 , 항상 곁에 있어 모르고 있던 소중함을 다시 마주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대부분은 돈을 지불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물건, 상품, 콘텐츠..... 유료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수록 프리미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게 맞는 듯 흘러간다. 가만 보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오히려 무료로 주어졌던 것 같다. 너무 무료로 주어져 망각하고 있다 그것을 잃고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바보처럼.......
' 사랑, 열정, 용기, 가족, 우정, 내 집'
긴 장거리 여행을 하고 나면 이 일상에서의 소중함을 더 자주, 깊게 느낀다. 하지만 돌아와서 예전과 또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다시 마주한다. 이래서 사람은 안 변하나 보다.
그런데 말이다. 이것도 반복이 되니 아주 느리게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마치 돌 위에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는 낙수로 어느순간 홈이 점점 깊게 패이는 것처럼....... 조금씩이나마 내가 가진 것, 주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의 강도가 점점 커지게 된다.
여행이란, 어쩌면 새로움을 마주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너무 익숙해서 특별함을 잠시 놓고 있던 평범한 우리의 순간을 다시 일깨워주는 것이 더 맞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