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 여자가 시집을 갔는데 남편이 맨날 아파. 몇 년간 병간호했는데 남편이 그만 죽어 버렸네.
남편도 없이 어떻게 사나 걱정하다가, 변두리 오두막집에 주막을 시작했어.
첫 손님으로 온 사람이 상복 입은 사람이야. 상복을 입었는데 멀쩡하게 키가 큰 사람이 술을 달라고 그러네.
옛말에 상복 입은 사람이 장사하는 집에 들어오면 재수가 좋다는 말이 있어.
"술 한 사발 달라."구
"아. 여깄 다."구
이 사람이 술을 한 사발 마시더니
"돈 없으니 외상 합시다." 하는 거야.
"그러라."구 했지.
아, 그런데 상복 입은 사람이 술을 마시고 나간 뒤부터는 손님이 바글바글 몰려오는 거야.
손님이 끓는 거지. 이튿날 되니까 그 사람이 다시 와서는
"술 한 사발 달라."구
그래 술을 한 사발 줬지. 마시고 나더니
"외상인데 어떡하지유."
"아, 돈 생기거든 주시유." 했어.
그날도 손님이 박작박작 거리는 거야. 사흘째가 되었는데 그 사람이 술을 또 한 사발 달라고 하는 거야.
주니까
"또 외상인데 어떡하지유?" 하는 거야.
"돈 생기거든 주시유." 했어.
그 사람이 가고부터는 도 손님이 막 몰려오는 거지, 아주 떼거지로 몰려와.
그 다음날 그 사람이 와서
"외상값 갚으러 왔시유." 하거든
"찬찬히 줘도 되는데. 돈이 생겼슈?" 하니까
"네, 생겼수다. 사흘 먹었지유? 사흘 먹었으니 삼백 냥을 드려야 하겠지유?"
하고는 삼백 냥을 주고 술도 안 먹고 가는 거야.
"아, 저기 여보슈....., "
불러도 휙 하니 가는 거야.
그다음 날도 와서는
"외상값 가져왔시유." 하고 삼백 냥을 두고 그냥 가는 거야.
이게 소문이 났네 그려. 장안에 장사를 하는 부자가 이 소문을 듣고
'야, 말로만 듣던 도깨비 터구나. 돈을 왕창 벌어야겠다.'
하고는 그 집으로 갔어. 근데 이 집이 돈도 안 되는 집이야. 허름하니 보잘것없는 집인데 욕심 많은 부자가 천냥 줄 터니 팔라고 하는 거지. 주인이 돈도 많이 벌었겠다 아쉬운 게 없어.
"아니라구. 나는 그냥 여기서 장사나 하려고 한다." 하니
"돈이 적어서 그러느냐?"
" 아니다. 그냥 나 여기서 장사 계속하려고 한다." 하니
더 얹어 줄 테니 팔으라구, 팔으라구 통사정을 하는 거지 뭐. 하도 그러고 하니 어떡하겠어,
그냥 팔아 버렸지.
부자는 돈을 더 벌 욕심으로 그 집을 헐어서 근사하게 고쳤어. 그리고 술장사를 하려고 하는데 개시 손님이 안 와. 그때 식전에 상복을 입은 장승만 한 사람이 와서
"술 한 사발을 달라." 하거든.
그래서 술을 한 사발 가져다 주니 벌컥벌컥 마시더니
"돈을 안 가져와서 외상인디 어떡하지유?" 하는 거야
"뭣이라. 오늘 첫 개시 손님이 무슨 돈도 안내냐고.."
멱살을 잡으며 당장 돈을 내라고 다그쳤어.
"아 돈이 없는데 어떡하지유. 참말로 어떡하지유." 하는 거야.
화가 난 욕심쟁이가 발로 차서 내쫓아 버렸지. 하루 종일 기다려도 손님이 안 와. 아무리 기다려도 안 와. 파리 새끼 한 마리도 안 와. 그 이튿날 되니 그 장승같이 생긴 사람이 와서
"술 한잔 주슈." 하는 거야.
"너 어제도 한 사발 처묵고 그냥 가지 않았냐." 하면서 혼을 내 쫓아버렸어.
그날도 사람이 하나도 안 와. 아무리 기다려도 손님이 하나도 안 오더래.
욕심쟁이는 어떻게 되었겠어? 그 집터를 누가 사러 오지도 않고 해서 쫄딱 망해 버린 거지 뭐. 욕심내다가 쫄딱 망해 버렸대.
같은 터인데 누구에게는 대박 나는 도깨비 터가 되고 누구에게는 망하는 터가 되네요.
도깨비 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손님을 대하는 마음 씀씀이와 태도에 있지요.
'아, 돈이 없는데 어떡하지유? 참말로 어떡하지유?'
라고 말하는 상복 입은 손님(도깨비)의 모습이 그려져요. 돈이 없어 '어떡하지유'를 반복하는 손님을 안타깝게 여기고 돈 생기면 달라고 하는 주인네의 후한 마음이 도깨비 터로 만들었네요. 주인네도 남편을 잃고 힘든 일을 겪었기에 어려운 사람을 연민의 마음으로 보았겠지요. 인정 있는 마음 씀씀이가 도깨비 터로 만들고 자기만 생각하는 욕심이 망하는 터로 만드네요.
제가 알고 있는 도깨비 터 식당이 있어요. 후한 인심과 손맛으로 손님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요.
내가 알고 있는 도깨비 터 식당.
이 집은 항상 손님이 많다.
코로나 시국에도 이 집은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허름하고 별거 먹을 것도 없는 집인데 한 번 이 집에 온 사람들은 잊지 않고 계속 찾아온다. 멀리서 찾아와서는 오히려 주인네에게 오래도록 음식을 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이상한 집이다.
주인네는 처음에 밥장사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란다.
쌀가게와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밥을 해달라고 했단다. 해주니 맛있다고 했더란다. 별나게 차린 것도 없는데 맛나게 먹고 가는 사람들을 보니 주인네는 마음이 흐뭇했다고 한다. 도회지 나갔다 온 사람이 이런 음식도 할 줄 아냐고 묻더란다. 사람들 말을 듣고 음식을 했더란다. 사람들은 음식 맛이 비슷하다며 가끔 해달라고 했단다. 뭐 어려울 게 있나 싶어서 알았다고 했더란다.
밥을 해주다 보니 사람들이 음식점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길래 구멍가게 한편에 음식을 팔았단다. 농사지은 쌀과 야채로 투박하게 차려줬는데 신기하게 사람들은 그것이 맛있다면서 계속 오더란다. 그래서 구멍가게도 접고 쌀가게도 접고 식당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집터가 참 좋은가 벼. 별거 넣은 것도 없이 뚝딱 음식을 해서 내놓으면 사람들이 그것을 게눈 감추듯이 다 먹어버려. 음식을 남기지고 않고 싹 먹는 것을 보면 내 배 부르듯 좋더라니까. 손님이 바글바글했어. 음식을 하다가도 신기하기도 했어. 뭐 볼 거 없는 시골에 뭐 먹을 거 별로 없는 시골 반찬인데 이게 맛있다고 찾아온다니까.이 집터에게도 고마워. 이 집은 돈이 샘솟는 집이여. 아이들 키울 때 돈 많이 들어갔는데 어찌어찌 다 돈이 채워지는 거야. 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오는 거지. 나도 이제 늙어서 그만할까 하는 마음이 드는데 그동안 내 음식 먹으러 와준 사람들에게 고마워서 그냥 장사하는 거야. 참 고맙지, 여기서 번돈으로 자식들 가르치고 땅사고, 집도 사고 그랬거든. 번듯한 새 집이 있어도 나는 여기 이 집터가 좋아. 허름하지만 이곳이 나에게는 궁궐 같다니까."
주인네는 돈 벌어주는 이 집터가 고맙다며 오늘도 음식을 만든다. 그 음식을 오랜 시간 맛보았기에 투박한 밥상이지만 속 든든한 밥상임을 알기에 오랫동안 두고두고 맛보고 싶은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