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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오늘이 Mar 06. 2024

나를 살리는 노란병, 파란병, 빨간병

<옛이야기 에세이>



"아휴 분해, 아휴 분해. 말 한 끼, 사람 한 끼, 두 끼 거리가 도망가네."

하며 쫓아오는 여우누이. 말을 타고 달아나는 셋째를 향해 달려온다.

말꼬리를 잡을랑 말랑 하는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 셋째는 색시가 준 노란병을 던진다.

"휙!"

삐쭉빼쭉한 가시덤불이 생긴다.


여우누이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와 다시 셋째를 뒤쫓는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말의 속력을 내서 달아나지만 바짝 추격하는 여우누이에게 금방 잡힐 듯하다. 그 순간 셋째는 파란병을 던진다. 이번에는 시퍼런 강물이 생긴다.


여우누이는 어푸어푸 강물을 헤엄쳐 나와 다시 쫓기 시작한다. 여우는 끈질기게 따라온다. 말꼬리가 닿을락 말락 할 때 셋째는 마지막 남은 빨간병을 던진다. 사방이 시뻘건 불다바다가 된다. 눈도 눈도 삐죽, 입도 삐죽, 귀도 삐죽한 여우는 불바다 속에 타 죽고 만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추격전이 끝나는 순간이다.

"후유"

비로소 깊은 안도의 숨이 나온다.


어릴 적 <어우누이> 이야기를 들을 때면 숨 막히는 추격전으로 손에 땀이 삐질삐질 났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시퍼런 강물도 거침없이 헤엄쳐 나와 말꼬리를 잡을 듯 말 듯할 때는 내가 셋째가 된 듯 숨이 턱까지 찼었다.


살다 보면 여우누이가 맹렬히 쫓아오는 예기치 않는 순간이 있다. 여우누이는 내면에서 올라오는 무의식이다. 밑도 끝도 없이 내면에서 올라오는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여우. 그 여우는 무의식이 의식을 압도하듯 우리를 삼켜버리려 한다.


여우에게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서 어떡해야 할까?

이럴 때는 벗어나야 한다. 셋째처럼 빠르게 말이다. 여우누이를 이뻐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형은 벗어나지 못했기에 여우에게 잡아먹혀 버리고 만 것이다. 여우에게 잡아 먹히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내면은 피폐해진다. 그러나 그 마음 상황에서 벗어나면 숨 쉴 일도 있고 걱정했던 일도 그리 큰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여우누이> 옛이야기는 우리에게 자신을 살리는 노란병, 파란병, 빨간병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두려움과 불안에 떨 때 '괜찮아, 네 안에는 너를 살려주는 세 개의 병이 있어. 걱정하지 마' 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불쑥불쑥 시도 때도 없이 내면에서 튀어나오는 여우누이. 끈질기게 따라붙는 두려움과 불안할 때 그 순간에 자기 안에 있는 병을 던지면 되는 것이다. 그 병을 던지면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

노란병을 던져도 여우가 쫓아오면 파란병을 던지면 되고 그래도 쫓아오면 빨간병을 던지면 된다. 빨간병에는 여우도 어쩔 없이 불에 죽듯 우리의 내면 깊은 곳으로 여우는 사라진다.


셋째가 여우를 죽이고 색시와 행복하게 살듯 우리도 두려움과 불안을 떨치고 마음 편하고 행복해 살 수 있다. 다음에 또 올라와도 우리에게는 세 개의 병이 있음을 알기에 괜찮다. 옛이야기를 즐기다 보면 우리 안에 있는 노란병, 파란병, 빨간병을 발견하게 되고, 마음 근력이 커지게 된다.







<오늘이가 들려주는 옛이야기>

'여우누이'


옛날, 옛날 아들 셋을 둔 부자가 살았어.

부자는 딸 갖는 게 소원이야. 날마다 서낭에 가서

“여우 같은 딸이라도 하나 낳게 해 주세요.”

라고 간절히 빌었어.

얼마 있다 아기를 낳았는데 딸이야. 부자는 딸만 이뻐하고 아들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대.


그런데 딸 낳고부터는 자고 일어나면 소가 죽어있고,

자고 일어나면 말이 죽어있네.     

부자는 큰아들을 불러 무슨 일인지 밤에 지켜보라 했지. 큰아들은 지키다 잠이 들었어.

둘째도 마찬가지였어. 셋째가 콩을 볶아서 먹고 외양간을 지키는데

여동생이 손에 참기름을 바르고 말 똥구멍에 손을 쑥 넣어서 간을 꺼내 먹는 거야.

말은 푹 쓰러져 죽었어.

다음날 셋째는 밤에 본 것을 말하자 아버지는 여동생을 시샘해서 없는 말을 했다며 셋째를 내쫓았어.     


셋째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살았어.

어느 날 아이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는 거북이를 물에 놓아주었어.

거북이는 고맙다며 셋째에게 함을 주었어. 무엇이든 나오라면 나오는 함이야.

셋째는 그 함으로 부자도 되고 색시도 얻었어. 그런데 살다 보니 자꾸 집이 떠오르는 거야.

한번 집에 가 보겠다고 하니 색시가 말려. 계속 가겠다고 하니 색시는 노란병, 파란병, 빨간병을 주며

급할 때 하나씩 던지라고 했어.    


셋째가 말을 타고 살던 집에 가니 동네도 없어지고 사람도 없어. 풀만 무성하네.

그때 어디선가 누이동생이 나타나서는

“아이고 오라버니, 어디 갔다 이제 왔어?‘하며 손을 덥석 잡는데

가만 보니 눈도 쭉 찢어지고 입도 쭉 찢어지고 귀도 삐죽 나와서 꼭 여우 같아.

여우누이는 오랜만에 왔으니 밥이나 먹고 가라며 기다란 끈을 셋째 손목에 묶고 한끝은 제 손목에 묶고 부엌으로 들어가.

”오라비 오라비, 얼른 밥 지어 올 테니 어디 가지 마시우 “하며 끈을 잡아당겨.

셋째는 어디 안 가마 하고는 끈을 풀어서 문 손잡이에 묶어놓고 말을 타고 달아났어. 뒤를 돌아보니 여우누이가 쫓아오는 거야.


”아이고 분해, 아이고 분해. 사람 한 끼 말 한 끼가 도망가네. “

여우누이가 바람처럼 다가와 말꼬랑이를 잡을랑 말랑 할 때 셋째는 노란병을 던졌어.

가시덤불이 쫙 깔렸지. 여우누이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와 바람처럼 달려 말꼬랑지를 잡을랑 말랑.

셋째는 이번엔 파란병을 던졌어. 시퍼런 물이 생겼어. 여우누이는 물을 헤엄쳐 나와 말 꼬랑지를 잡을랑 말랑하네. 셋째는 빨간병을 던졌어. 시뻘건 불이 활활 타올라 사방이 불바다가 되었어.

여우누이가 뜨거운 불바다에 빠졌는데 가만 보니 눈도 삐죽, 입도 삐죽, 귀도 삐죽한 여우로 변했어.

여우는 불바다에 빠져 죽었어. 셋째는 집에 돌아와 색시와 어제까지 행복하게 살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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