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버밤반의 연속
육아휴직을 한 계기부터 육아휴직 기간의 생활들, 휴직 중 및 휴직 후에 느끼는 생각들에 대해서 조금씩 적어보았습니다. 아빠 육아휴직자가 생소하던 시절에 두번이나 휴직을 해서 그런가 회사 내에서는 아빠육아의 선구자라고 하네요.
사실 이 소리 듣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회사 내에 휴직자 증가와 저출산에 대한 인식개선에대해서는 아주아주 조금은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휴직을 하고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우울증도 빠져보고 무기력증에 빠지기도 했죠. 운동도 열심히하기 시작했고, 또한 자주 아프기도 했습니다.
우울증 타개로 게임에도 빠져서 게임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 다양한 직업의 아빠들과 소통하는 계기가되기도 했죠. 상승 및 하강곡선을 넘나들던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운좋게 복지부에서 저출산 대비 시작했던 ‘100인의 아빠단’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빠단 활동을 하면서 처음 2년은 활동자로, 또 다른 2년정도는 멘토로써 활동을 하면서 복지부에서 주관하거나 연계된 저출산 및 아빠육아 토론, 촬영, 인터뷰 및 다큐멘터리 촬영에 2~3년 정도 열심히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멋지네요. 심지어 KBS 아침마당 생방송에도 출연했었거든요!
그런 활동을 하던 제 나이가 35~40세 때였으니, 인생의 제2황금기를 육아와 밀접하게 보냈군요. 인터뷰 등을 준비하면서 육아서도 많이 보고, 심리책도 읽고, 저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하면서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육아 전문가도 아니고, 심리 전문가도 아니지만 다양한 경험에서 나오는 생각의 전달만으로도 상당한 호소력과 전업맘 및 독박육아 가정의 공감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미천한 지식이였기에 지금은전문가(?) 같은 행세는 전혀 안하고, 그냥 두 아이를 키우는 지극히 평범한 아빠로 돌아가 오히려 다른 가정에게 배울 점을 배우면서, 성장 중입니다.
요즘 아내가 바빠지면서, 주말에 홀로육아를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두 초등 아이들과 보내면서, 나름 내공이 샇였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낮버밤반을반복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무슨 일만 있으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징징거리고 울길래 울지마라고 했더니, 다음과 같은 한 문장을 남기네요.
“아빠도 소리 지르자나!” 끙...
낮버범반을 하고 자기 전에 아내와 맥주 한잔을 마시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아내와는 회사이야기 외에도 첫째에 대한 교육, 둘째는 성장 및 정신과 치료관련 이야기가 대화의 메인 주제이지요. 낮버한 상황에 대해 서로 공유하고 반성도 자주 합니다. 아직은 육아그릇이 크기에는 멀었나 봅니다. 육아하는 아빠 ‘육아빠‘가 아니고, 욱만하는 ’욱아빠‘인가봐요
어른의 입장에서 상당히 중립적이고, 도덕적이고, 합리적이고, 정답같은 절충안으로 잔소리를 해대지만, 아이들의 입장과 생각 및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아빠의 일방적인 생각전달인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은 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내공을 쌓으려고 합니다. 제가 아는 저의 성격 상 쉽지는 않습니다.
그날그날의 위기상황들,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육아의 빅픽쳐들을 달성하지 못한 채 아이들과 함께 손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을 공유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너무 빨리 커져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아쉽고, 육아휴직을 시작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네요. 저도 늙어가나요?
언제나 사랑과 든든함을 주어야만 하는 우리 부부. 거칠어지고 개성있는 이 세상 속에서 아이들이 독립적이고 스스로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오늘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중간중간 아이들의 눈빛을 마주치고 관찰해봅니다. 부족한 내공은 할아버지가 된 나이에도 다 채워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부분에 집착을 차츰 조금씩 버리고, 그로인해 문제가 되지 않도록 때론 과감히 포기도 하면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동행을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