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러너 Aug 05. 2024

다시 반 백수가 되어 맞이한 월요일

31세 히키코모리에게 알바는 냉혹했다.

지난주, 용기를 내어 두 군데 알바를 시작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는 순간,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듯했다.


한 달은 일 할 수 있겠지?

1주 뒤

응 아니야.


세상은 예상보다 훨씬 냉혹했다. 두 군데 알바 모두 무경력임을 알고 채용했고, 늦은 나이에 일을 시작하고 친분이 엮여있으니 몇 번의 실수를 감안해 줄 줄 알았다. 지금까지 나의 삶과 배움의 과정을 돌이켜보자면 아무리 준비를 하더라도 결국 경험하지 않으면 헤매는 부분이 있기에 개요만 훑어보고 남은 부분은 경험을 통해 배우려고 했다. 게을렀고 안일했다.


결국, 한 주 만에 거의 백수가 되었다. 카페 알바는 3일 만에 잘렸고, 편의점 야간 알바는 5일 만에 일과 시간이 줄어든 주말 오전 알바로 강등되었다. (스스로는 0.5 해고라고 단어를 만들었다) (편의점 알바 강등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이번 주 중 업로드 예정)


근무 기간이 줄고 편의점 알바만 남게 되어 육체적 부담이 줄었다. 시작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처음 편의점 알바를 제안받았을 때 주 2~3일로 듣고 시작하였으니, 따지고 보면 손해도 아니다. 그래도 에상보다 일이 늘었었고, 벌어들일 거라 기대했던 돈에서 1/4 토막 나니 아쉽다. 하지만 지난달엔 아예 수입이 없었으니까 발전한 거지. 빠르게 잘리니 돈을 받는 기쁨을 한 주 만에 느낄 수 있었잖아. 럭키비키.




백수와 돌아온 백수의 차이


2주 전의 육체적 안락함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폭염 경보가 연이어 발령되며 외출 자제 재난문자가 끊임없이 왔다. 사실 문자조차 필요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더위가 몸을 휘감아 에어컨 바람을 간절히 원하게 만들었다.


처음 돈을 벌어보니 알바나 직무에 대한 두려움이 줄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 처음 대중 앞에서 발표할 때는 눈물을 흘리며 아무 말도 못 했었다. 그러나 몇 번의 경험을 쌓고 나니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남들과 눈 맞춤도 가능해졌다. 게임대회에서도 처음에는 손을 심하게 떨다가 경고까지 받았지만, 점차 적응하게 되었다. 남들이 하는 잔소리는 집에서 듣는 것에 비하면 별로 데미지가 크지 않았다.


막상 알바를 해보니 난이도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게임보다 전환이 느리고 할 일이 적었다. 각각의 업무에 능숙하지 못해 느렸을 뿐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배워나가는 속도와 비교해 보면 지금의 헤맴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점주님들은 신입을 따로 가르칠 필요 없이 일에 능숙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충분한 기간을 제공받지 못했을 뿐이다. 나이가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겠지.


한 번 돈을 벌어보니 욕심이 생긴다. 아직 주말 알바만 하지만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더 벌기 위해 평일 알바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상조다. 이미 적응에 실패해 자신감이 조금 떨어졌고, 지난주에는 사실상 편의점 알바만 4일만 했어도 몸이 아직 따라오지 못하는 느낌이 있다. 수면 패턴을 억지로 바꿨는데 다시 바꾸어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그래서 한 달은 주말 편의점 알바만 하면서 추후를 도모하는 게 건강을 유지하는 길로 보인다.



사회적 맥락에서의 히키코모리


우리 사회에서 히키코모리는 여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게으르다고,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극심한 경쟁과 압박, 그리고 개인의 심리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의 심정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남에게 관심이 없음을 보고 알았다. 일반인들이 늦게 시작하는 히키코모리를 보면 자신들이 같은 경험을 앞서서 했다고 착각하며, 자랑하듯이 조언을 내뱉곤 한다. 하지만 그들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은 분명하게 다르다. 이들도 이력서를 내고 숱하게 까였겠지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가 많이 줄어들었기는 하다. 당장 나는 카페 알바를 하고 싶지만, 나이가 있어서 잘 받아주지도 않으며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편의점 알바는 그나마 편의점 알바는 늦어도 취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알바이지만  내 나이쯤 되면 알바 경력자들이 득실득실하기에 묻힐 수밖에 없다. 정말로 도움을 주고 싶었을 분도 계시겠지만, 대부분의 조언은 슬프게도 적용하기 힘들었다.



앞으로 마음가짐과 계획


현실과 맞서 싸우면서 마음을 지키고 살아가려면 작은 진전에도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또 불리함을 인정하고 작은 기회가 왔을 때 상상할 수 있는 최선 그 이상을 해야 기회를 붙잡을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이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나름대로 마음이 단련이 돼있는 상태임에도 그렇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고, 기회가 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지식들을 파악하고 빠르게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매일 라떼아트를 준비하고, 어느 직무에서도 필요할 법한 언어 공부를 하고 있다. 주말로 근무요일이 바뀌면서 평일에 커핑과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중에 일을 하면 다니는 횟수가 더 줄어들 테니. 움직일 수 있을 때 바짝 움직이자.


자기 계발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 단기적인 재정 계획도 세우면서, 불확실성 속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앞으로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모든 경험들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히키코모리였던 과거의 나와 작별하고, 이제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야 살 수 있다. 매일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들을 하나씩 쌓는 수밖에 없다.



이전 09화 너는 아직 1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