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글에 대해서 오해가 있을까 봐 다시 적는다. '해고로 인해' 화가 난 건 아니다. 2일 차를 본 사람이 있다면 지난주에 이미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는 진즉에 하고 있었어서 주말 즈음 인스타 프로필에 카페에서 근무한다는 내용을 떼두기도 했다.
다만 사장이 역린을 건드렸을 뿐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욕지거리 글을 쓸 정도로 분노해 놓고, 면전에서 얘기하지 않는 이유는 화남이 시간 지나서 올라왔을 뿐이다. 그렇게 화가 난 적이 인생에서 이번 일 포함해서 세 번 있다. 하나는 10년 전 친척과 절연, 비교적 최근에는 커피 모임에서 나오기 전 겪었던 일들이 있었다. (심지어 이 새끼는 어제 카페투어하다가 우연히 마주치기까지 했다. 아무 말도 섞지 않았고 그 새끼랑 눈조차 마주치기 싫었다.) 차라리 나쁜 짓을 할 거면 철저하게 나쁜 사람이 낫다.
이들의 공통점을 따져보자면 나쁜 짓을 하면서 대외적으로는 환심을 사기 위해서 가식을 떤다. 그게 싫었다. 그런 울먹이는 표정들 혹은 환심을 사기위한 선행들로 나쁜 행동들을 덮거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싫었다. 그랬을 뿐이다. 그런 사람을 진심으로 혐오한다는 걸 이번 계기로 확실하게 느꼈다. 욕을 할 지언정, 가식을 떨고 싶지는 않다.
어제 글을 쓰고 카페투어를 하면서 약간 마음의 안정을 찾았었다. 어제는 매 달 바뀌는 편의점 행사상품태그를 교체하는 날이라 몸이 바쁘기도 했었다. 그것도 도움이 좀 된 것 같다.
글을 쓰던 찰나에 엄마가 들어왔다. 아빠의 병세에 대해서 말해주는 정보가 제한적이라 자초지종은 잘 몰랐다. 평소에도 나를 보호하려는 명목으로 집안 사정에 대해서 잘 몰랐다.
화장실에 있어서 엄마에게 제대로 대하지 못했는데, 평소와 달리 말이 없어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나와서 엄마의 얼굴을 봤는데 이미 울먹이고 있었다.
지난 월요일 아빠가 본 MRI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 오늘이었다고 한다. 병원에서 처음에는 가볍게 여겼는데 그래도 정확한 확인을 위해 무리해서 MRI 검사를 신청했다. 그리고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검사비용은 오늘 결과로 인해 보험이 추가적용되어 30만원에서 3만원으로 줄었다.
아빠의 지금 병명은 '청신경초종'이다. 검색해 보니 청신경초종은 귀와 관련된 신경에 생기는 양성 종양이다. 이 종양은 천천히 자라면서 청력 손실, 귀에서 소리가 나는 이명, 그리고 균형 감각 저하 같은 증상을 일으킨다. 치료 방법으로는 종양의 크기와 증상에 따라 경과를 지켜보거나, 방사선 치료, 또는 수술을 선택할 수 있다고 나온다. 방사선 치료는 받을 예정이라고 들었다.
'주저앉은 아빠 (brunch.co.kr)' 에서 언급했듯이 아빠는 길가에서 쓰러진 전적이 있다. 당시에는 검사결과에 뚜렷한 이상징후가 없는 것으로 알았다. 사실 이 시기에 아빠가 뇌졸중과 뇌출혈이 경미하게 있었다고 한다. 엄마도 이번 검사결과를 전달받으면서 새롭게 아셨다.
돌발성 난청이라면 청력이 돌아올 수 있다. 엄마 주변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돌발성 난청을 겪은 사람이 있었는데 대부분 청력이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뇌의 문제라면 상황이 달리진다. 아빠의 청력은 돌아오지 않을 확률이 더 커졌다. 어제 아빠랑 저녁 먹으면서 들은 이야기로는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대쪽 귀조차 나빠지고 있다고 한다. 만약 병이 이렇다면, 나아지려고 하는게 아니라 악화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수술까지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치료과정을 단거리로 착각했다면 이제부터는 장거리 마라톤을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변화해야 한다. 당장 나아지기 힘들고 점차 나아질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장기전으로 바뀌었으니 진료를 받을 병원도 회사 근처로 옮기려고 하신다.
엄마는 집안 형편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지금까지는 나를 챙길 여력을 어느 정도 남겨 두었다고 하셨지만, 돌발 상황이 생겨서 당장은 현금이 없는 상황이니 알바를 최대한 잘리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편의점이 앞으로 더 잘 될 거라는 전망을 내세우며 편의점 창업에 대한 근거를 더했다. 나도 어느정도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까, 은둔을 꺠고 상반기에는 밖에 나서고 하반기에는 마음을 회복한 뒤 구직활동에 적극적이었었다.
이런 상황까지 닥치니 놓쳤던 카페 풀타임 취직 기회가 더욱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 남들만큼은 아닐지언정 지금 파트타임 알바보다 돈은 더 벌고 있었을 테니까. 지난주 초, 이에 대한 글을 거의 다 작성해 두었었는데, 알바 취직이 되어버려서 브런치에 올리지 못했다. 글감이 떨어지는 날이 오면 올릴 것이다.
장원영을 본받아 안좋은 상황 속에서도 긍정을 찾는 럭키비키 마인드를 좀 가져보자면, 아직까지 편의점 알바는 덜컹거리면서 나아가고 있다. 조금은 더 절박하게 일을 하고, 그토록 하기 싫었던 '현실적'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빠나 엄마한테는 힘든 내색 안 하려고 부단히 신경 쓰고 있다. 진짜 눈물만은 보이고 싶지 않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감정에 덜 흔들리는 게 나니까. 나마저 흔들린다면 우리 가족의 감정 상태가 더 안 좋아질 거 같아서다. 아빠랑 톡을 하면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가볍게 했다. 아직까지 검사 결과를 듣지 못한 척이라고 할까.
그치만 속으로 글을 쓰면서, 몇 번이고 울먹였다. 할머니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못해서 죄책감을 가졌던 내가. 울었다. 그만큼 마음이 아프다.
아빠는 여전히 출근을 하신다. 직장에서 아빠는 최고령자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큰 맘먹고 정년퇴직할 연령보다도 더 든 아빠를 고용했는데, 병을 핑계로 회사를 아예 쉬어버린다면 잘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아빠를 회사로 밀어낸다.
'늙었으니까 저렇게 병드는구나.'
아빠는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몸이 죽어나더라도 7시에 집을 나선다. 기존에도 이미 한 달 가량의 병가를 권장하였지만, 이제는 방사선 치료까지 받으면서 회사로 들어가야 한다.
지금도 치료와 직장을 병행하시니 아침 일찍 나가더라도 병원에 들렀다 회사에 간다. 퇴근도 일찍 하신다. 그나마 다행이다.
전처럼 술을 마시지 못한다. 난청이 생긴 이후로는 적어도 집에서는 입에 대지 않았다. 아빠가 매일 같이 마시던 술은 이제 독극물이 되었다.
엄마는 돈을 줄이기 위해서 매일 한 잔씩 테이크아웃하던 라테도 사드시지 않는다. 20년 가까이하시던 수영도 오늘 집에 들어오고 나서 연기 신청을 하셨다. 수영을 할 만한 기분도 아니고, 시간상 아빠의 케어와 수영 수업을 병행할 수 없었다. 매일 아빠가 한 시간 넘는 거리를 지하철 타고 다닐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니 엄마가 차로 데려다주어야 한다.
나는 철없이 커피에 돈을 쓰지만 위기감을 느끼고 알바 자리를 적극적으로 구했고 운이 좋게도 취직이 되었다. 하나는 잘렸지만 남은 하나는 안간힘을 다해서 붙잡아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 수입으로는 가정을 부양할 수준이 전혀 못되니, 진로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한다. 어떻게든 살자. 같이. 아빠 없는 삶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