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차 근무가 시작되었다. 이제 익숙해진 듯한 편의점 불빛 아래 서니 어느새 조금은 편안해진 기분이 들었다. 문을 열 때는 긴장감이 가득하면서도 또 돈을 벌겠구나 하는 뿌듯함이 공존했다.
들어서니 계산대에 어제도 오셨던 사장님의 지인이 계셨다. 내가 들어서니 "시간을 잘 지켜서 오네"라고 독려해 주셨다. 나는 서둘렀지만 집이 가까워서 늦지 않게 도착했다고 답했다.
지인 분은 알고 보니 편의점 운영 경험이 있는 분이었다. 그분은 사장님 부부와 나에게 추가적인 교육을 해주셨다. 모호하게 알고 있던 12시 금고보관과 인수인계에 대해서 정확히 알게 되었다.
진열대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물건들의 위치를 대략 알게 되어 손놀림이 빨라졌다. '많이 나아졌어, ' 스스로를 격려하며 일을 시작했다.
지인분은 고객 응대 방식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봉지 드릴까요?" 계산대에서 하는 새로운 시도를 통한 작은 성취감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사장님 부부의 긴장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힘들었고 지인분의 FM스런 방식이 기존에 일을 하던 방식과 충돌하였다. "아니, 그렇게 하면 복잡해요. " 사장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인분도 지지 않고 "운영은 이렇게 해야 해요. 서로가 나눌 책임이 있는 거라고요". 두 사람의 언쟁이 계속되자 나는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이런 긴장된 분위기는 하루 종일 이어졌다. 사장 부부는 평소보다 더 예민해져 있었고, 작은 실수에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아니, 그건 거기가 아니라니까!" "어떻게 이렇게 간단한 걸 못하니?"라는 말들이 자주 들렸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하려 노력했지만, 처음 겪는 그들의 날 선 반응에 자꾸만 긴장이 되었다.
쉬는 시간엔 조언해 주신 것처럼 이리저리 돌면서 진열을 가다듬고 재고정리를 하였다. 알려주시진 않았지만 재고가 없는데 찾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 미리 재고를 바코드에 찍어보고 확인하는 작업을 하였다. 실제로 재고가 없는 물건이 많아서 발주를 할 수 있도록 따로 적어두었다.
새벽 1시, 폐점 시간이 다가왔다. 마감 업무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바깥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로 향했다. 무거운 뚜껑을 내리고 잠그는 일, 처음에는 5분이나 걸렸던 이 작업이 이제는 약간의 버벅거림만 있을 뿐이다. '아마 내일이나 다음 주면 완벽해질 거야, '라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이어서 가게 앞 커튼을 내리고 정돈하는 일로 넘어갔다. 첫날에는 어색하게 만지작거렸던 커튼도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가게 안을 둘러보며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고, 바닥을 한 번 더 쓸었다.
오늘 나름의 뿌듯함을 느끼며 곧 혼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러고 나온 사장님 말씀.
"넌 아직 1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 그러니까 아직 내가 너를 케어하고 있는 거야."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막히는 듯했다. 며칠 동안 쌓아온 자신감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내가 느낀 진전은 모두 착각이었던 걸까?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 걸까?' 자괴감과 무력감이 밀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안감이 엄습했다. 또 잘리면 어쩌지? 편의점에서조차 일을 못한다면, 나는 어디서 일할 수 있을까? 히키코모리였던 나에게 알바나 직장은 너무 버거운 과제였던 걸까. 그렇지만 이미 남들은 다 하고 사는 일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데. 어쩌지?
잠자리에 누웠다. 잠에 드는 시간은 빨랐지만 깊게 들지 못했다. 그 순간이 꿈에도 나와버렸다. 일어나고서는 지속된 수면 부족으로 두통이 찾아왔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병력이 떠올라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이전에도 두통이 심해서 수험 공부를 포기했던 전적이 있기에 겁이 났다. 나마저 건강을 잃는다면 엄마아빠를 누가 도와줄 수 있지.
하지만 포기할 순 없다. 이 일을 시작한 것은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었다. 비록 지금은 힘들지만, 이 또한 지나갈 거라고 믿는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거야. 그렇게 계속 다짐하며,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지금 처음으로 돈을 벌고 있잖아. 작년엔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잖아. 지금 이런 소리를 듣는 자체가 하나의 진전이라고 다독였다. 그리고 지금은 피할 상황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