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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러너 Aug 06. 2024

처음 돈 받은 날

31세 은둔형 외톨이 첫 알바 급여수령

2024.08.02 금요일


카페 알바 해고 3일 후. 저녁을 먹던 중에 돈이 들어왔다.


132,460원


내가 3일 동안 벌어들인 돈이다.


최저시급에서 수습으로 급여 10%가 까인 8,830원을 15시간 곱하면 들어맞는다.




원래는 약 2일 걸릴 것이라 하였다. 하지만 목요일에도 돈이 들어오지 않아서 노동청에 찌를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흔한 ‘지각’쯤으로 여기고 금요일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솔직히 고용주가 되어보지 않은 입장에선, 응당 주어야 할 푼돈을 주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필요한 절차가 있다면 댓글로 적어주시면 감사하다.


당초 계약대로 주 4일 5시간씩 일했다면 주휴수당도 받았겠으나, 그러지는 못했고 대신 파나마 롱보드 게이샤를 받기는 했다. 일반적인 한 잔 분량에 해당하는 20g에 4만 원 정도 하는 원두이다. 카페에서 남이 타준다면 한 잔에 5만 원 넘는 금액으로 판매한다. 워낙 비싸기로 유명한 원두이기에, 뜯기 전까지는 속이는 게 아닐까 의심도 했었다. 다른 바리스타에게 부탁하여 나눔 겸 추출을 부탁하고 같이 마셔보니 확실히 다르다는 게 아는 입장에선 바로 느껴졌다. 적어도 원두로 거짓말 치지는 않았다. 그러니 주휴수당 부분은 이걸로 챙겨 받은 셈이다. 매일 30분~40분 한가한데 시간 잡아먹고 해고하는 날은 한 시간 넘게 잡아두었으니 도합 두 시간 이상 초과근무도 있긴 하네. 굳이 따지기는 귀찮다. 영원히 안녕이다.


돈을 받아도 바로 쓸 곳이 정해져 있다. 당장 식사를 할 때마다 이가 시려서 충치치료를 받아야 한다. 아마 이번에 받은 돈보다 더 들 수도 있겠지만 이미 조금 진행된 것 같은데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다. 번 돈보다 많이드니 따로 분류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돈을 받았으니 홀가분하다. 생긴 돈으로 여러 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엄마는 이번 카페 알바 그리고 앞으로 일할 편의점에서 월급을 받으면 목돈을 모으라고 한다. 한 달에 백만 원으로 무슨 목돈이냐 싶기는 하다. 200만 원으로 사는 삶​을 상상해도 빠듯한 시기에 말이다. 목돈은 정말 푼돈에 불과하고 나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교육을 받고 싶다…

 

라고 마음을 정리하던 밤에, 0.5 해고를 또 당하고 말았다.(내일 업로드 예정) 예상수익은 180만 원에서 100만 원 내외로 또 거기서 50만 원 내외로 급여가 폭락해 버렸다. 한 달 생활비(30만 원 내외) 조금 남기는 하지만, 교육을 받을 만큼은 아니다.


여유가 생긴 만큼 평소 사고 싶었던 커피 추출 도구를 딱 하나 샀다. 마음 같아서는 여러 가지 후보 군이 있기는 했지만, 하루에 한 번에서 두 번만 쓸 텐데 다양하게 두어봤자 얼마나 자주 사용하겠냐 싶어서 딱 두 종류로 축약했다. 그러나 두 가지 구매하는 비용 그리고 동시에 배우기는 또 벅차다고 느껴서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했다. 고심 끝에 선택한 커피 추출 도구는 ‘에어로프레스’이다.


가격은 최저 37,100원이었다. 네이버 포인트를 제하면 체감 가는 35,000원까지 떨어진다. 에어로프레스는 브루잉 대회에서도 종종 등장하고, 국내 브루잉 대회에서는 우승자까지 배출한 훌륭한 브루잉 도구이다. 에어로프레스만을 위한 세계 대회도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추출 난도가 여타 브루잉 도구보다 쉬우며, 이 도구 하나로 에스프레소 스타일의 커피도 얼추 추출할 수 있다. 기존에 사용하던 하리오와는 다른 스타일의 도구라는 차별화도 선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추출 시간도 다른 드리퍼에 비해서 짧아 바쁜 아침에도 유용하다. 기다란 막대 형태라서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도 가장 용이하다. 이런 장점들 덕분에 에어로프레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것을 사고도 유료 세미나와 커핑이 있다면 한두군데 갈만한 돈이다. 알바를 다니던 주간에 스페셜티 커피에서 가장 유명하고 고급 산지인 파나마 커핑들이 몰려있었다. 파나마는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은 지역으로, 특히 게이샤 품종이 유명하다. 파나마 게이샤는 그 독특한 향미와 뛰어난 품질로 국제 커피 경연 대회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산지이다. 돈을 일찍 받고 빠르게 백수가 되었다면 참여했겠지만, 이미 늦어버린 일이다. 슬프지만 파나마 커핑은 다음 기회에… 그래도 다른 커핑은 꾸준히 참여하면서 센서리 실력을 계속 길러야지.  다른 유료 커핑들은 2~3만원 정도 세미나는 최소 3만원 이상 든다.


이렇게 해고와 급여 삭감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커피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커피가 나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것 같다. 또, 새로운 도구 ‘에어로프레스’로 커피를 내리는 상상은 기분을 띄워준다. 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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