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해봤는데, 자기가 편하면서 우리랑 오래 일하려면 주말에 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되물으니, 평일은 일하지 말고 주말 오전 6시에서 12시까지 일하라는 것이다. 예상 급여가 반 이상 깎이는 상황이다. 평일 주4일 야간 3시간 + 주간 1시간(오후 9시~10시) 총 20시간 근무에서 주말 주간 6시간 급여로 바뀌기 때문이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주전에서 벤치로 내려간 격이고, 게임으로 치자면 랭크 강등이 된 셈이다. 급여가 깎이고 일하는 시간이 줄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축구나 게임에서는 랭크 상승의 여지가 있지만, 편의점 알바는 고정되면 다시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내가 잘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의문이 든다.
사실, 사장님들은 내가 ‘은둔형 외톨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지인의 지인인 어머니를 보고서 뽑은 것이다. 그래서 원래라면 자를 만한 상황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나는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인수인계도 5일 만에 이루어졌고, 창고 위치도 5일 만에 알려줬다. 진열 빈 것도 내가 다 알아냈다.
그렇다고 해서 욕지거리를 할 만큼 화가 난 건 아니다. 사장님들은 솔직했다. 전날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황이기에, 내가 일을 못한다고 판단하셨다. 이번에 밀려났는데, 다음에 또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직무 경험 측면에서도 그렇고, 아주 짧게 근무한 건 오히려 경력에 악영향이기만 하다.
구체적으로 속마음을 드러내자면 이렇다. '오늘 환불 고객을 처음 응대해서 살짝 헤맸다는 걸로도 몇 번을 우려먹었는데? 이미 반쯤 찍혔는데, 앞으로 실수 한 번만 걸려도 잘리는 파리목숨 아니야?'
사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한 시간에서 하루면 다 배운다고 하던데, 우리는 너가 못미더워서 4일이나 기회를 준 거야.” 이는 전날 오신 지인분이 하신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장님은 편의점 알바를 할 사람은 많다고 나를 압박하셨다. 공고만 올리면 할 사람은 넘친다고. 주말 모든 시간을 알바로 돌릴 예정이고, 내가 원래 하던 시간도 따로 알바를 구할 것이라 하셨다.
다소 의역) '네 놈에게 우리는 과분한 기회를 주고 있는 거야. 원래대로라면 잘랐어야 해.'
일반적인 상황에서 한 시간에서 하루 배운 걸로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근데 같이 초보라서 서로 헤맸고 알려주는 것도 더뎠지 않나. 실제로 3일차에는 보다 못한 지인 편의점 사장이 와서 전체적으로 다 알려주지 않았나.
사장님은 나를 아들같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감정적 교감을 유발하며 의도대로 끌고 가려는 말처럼 느껴져서 싫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내가 똑똑했던 아이라고 들었다고 한다.
아, 이 말은 정말 초등학생 때부터 듣기 끔찍히도 싫었던 말이다.
내가 멍청한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이건 자기비하가 아니라, 내가 가진 특성과 삶의 궤적에서 기인한다. 정해지고 숙달된 업무는 빠릿빠릿하게 하지만, 그 외의 상황이 닥쳤을 때 머리가 마비되는 사람을 두고 똑똑하다고 할 수 없다. 정말 똑똑한 사람이라면 공부를 조금만 해도 성적이 팍팍 나왔겠지만, 나는 공부 투입 시간 대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던 학생이었다. 그런 부족함을 알기에 게임을 할 때는 데이터를 쌓기 위해 판수가 눈에 띄게 많은 편에 속했다. 그리고 사회적응도 잘했겠지. 지금 일도 금방 적응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못했다. 이런 사람을 뭘 보고 똑똑하다고 하나. 제3자 시선에서 실제 일하는 걸 몇 초만 봐도 어리버리하고 멍청한 게 딱 보인다.
나는 멍청한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에, 이 상황에 조언을 구했다. 엄마에게 물어도, 지인에게 물어도 하는 쪽이 더 맞다고 들었다. 여기서 잘리더라도 다음 경험에서 더 잘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거다. 그런데 이건 다음이 있다면이라는 가정이다. 이미 20대 때 편의점 알바 면접에서 떨어진 전적도 있고, 30대에 무경력인 나를 고용할 업주가 또 있을까? 이미 실패했는데 다음에 잘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잘해야겠지?라고 한다면 지금도 잘해야 했던 거잖아. 그런데 못했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 왜 나는 쉽다는 편의점 알바마저 짤릴 위기에 놓였는가. 이런 일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데 앞으로 일에 대해서는 잘 해낼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 시작한 게 학습 속도에 차이를 일으키는 것인가. 혹은 외부에서 바라볼 때 안 좋게 볼 수 있는 프레임이 끼어버려서 그런가.
처음부터 평일 야간이 한가할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면접 전날까지 주 2~3일 낮 알바인 줄 알았다. 오히려 예상보다 넘치는 자리를 얻었다. 부족함은 따로 없었다.
이 사건을 나는 '0.5 해고'라고 명명했다. 완전한 해고는 아니지만, 근무 시간과 급여가 거의 반으로 줄어든 이 상황은 실질적으로 내 고용 상태가 절반으로 축소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0.5 해고'라는 표현은 단순히 근무 조건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내 능력에 대한 평가 절하, 자존감의 하락, 그리고 앞으로의 불확실한 고용 상태를 모두 함축하고 있다. 완전한 해고만큼이나 큰 심리적 충격을 주는 이 상황은, 내게 남은 절반의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쓰라린 교훈을 남겼지만, 동시에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카페 알바 해고에 이은 '0.5 해고'를 겪으며, 나는 한계를마주하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극복하고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지, 그것이 내게 남은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