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먹은 딸도 삐진다

돼지갈비 먹은 날의 진실

by 피어라

한 달에 한 번, 주로 마지막 주에 여동생과 함께 팔순 넘으신 친정 부모님댁으로 휴가를 간다. 두 딸은 남편과 자식들로부터 벗어나는 날이고, 부모님은 보고 싶은 딸들과 저녁 한 끼 먹으며 적적함을 잊고 함께 아침을 맞는 날이다. 12월에는 마침 내 생일도 있고 해서 저녁을 먹고 하룻밤 자고 오기로 했다. 운전을 하는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고 식당으로 바로 오기로 했고, 먼저 도착한 나는 걸어서 가기로 했다. 차가운 한파를 뚫고 씩씩하게 걸어가는데 운전 중인 동생의 전화가 왔다. 거의 다 도착했다고 어디까지 왔느냐고 묻는 동생의 목소리 뒤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유니, 빨리 와. 보고 싶어."

"어, 엄마. 거의 다 왔어요. 금방 갈거야. 먼저 들어가 계셔."

"응, 조유니 사랑해."

팔순 할매와 오십 딸의 닭살 통화를 끝내고 부지런히 걸어 약속한 식당에 도착했다. 추운 날 첫 딸 낳느라 고생하신 엄마에게 선물할 꽃 한줄기 들고서.


그렇게 만나서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돼지갈비를 맛나게 구워 먹고 넷이서 친정집으로 들어갔다. 물론, 2차를 즐길 술과 안주도 챙겼다. 간단히 안주를 차려 맥주를 마시는데 동생이 웃긴 얘기해주겠다며 말을 꺼냈다.


"있지, 안여사 되게 웃긴다. 아까 언니랑 전화할 때 있잖아. 스피커폰으로 조유니 사랑해, 큰소리로 말했잖아. 기억나?"

"응, 그랬지."

"엄마가 전화 끊자마자 뭐라 그랬게?"

"뭐가 그랬는데?"

"얘는 이래야 좋아해."

"엄마!"

도끼눈을 뜨고 고개를 모로 돌려 쳐다보니 옆에서 드라마 보시던 엄마가 민망하게 웃으신다.

"몰라, 나 삐졌어! 뭐야 진짜로 나 사랑해서 말하는거 아니야? 진심이 아니었던거야? 내 비위 맞춰준거야? 어떻게 사람이 그래?"

오십 먹은 큰딸, 심술이 제대로 났다.

"에이, 아니야, 우리 큰딸, 풀어."

"됐어, 안 풀어."

"그럼 꼬던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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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여사는 이런 사람이다. 미운 다섯살 답게 미운 말을 이리저리 하던 손녀딸이 "할머니 싫어!"라고 하면 쿨하게 "나도 너 싫어."라고 되받아 치기도 하고, 깜빡잊고 밥솥 버튼을 안 눌러 밥이 못먹게 된 날 아침에는 "어쩌지, 밥솥을 열었는데 쌀알이 말똥말똥 쳐다보네."라고 민망한 마음을 유머로 전달하기도 한다. 그만큼 매력이 넘치기도 하지만 조금 멋대로인 면이 많다. 솔직히 친정엄마와 딸로 만나 다행이지, 시어머니로 만났으면 진짜 쉽지 않았을것 같다.

서운한 마음을 풀기 싫다고 하니 그럼 꼬던가, 라고 무심하게 툭 던지는 엄마의 한마디에 이미 웃음이 터지고 마음도 슬그머니 녹았다. 그래도 서운했던 티는 좀 더 내야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하나. 믿었던 친구들한테 배신당한 열두어 살짜리 꼬마처럼 절교선언이라도 한 번 해야하려나? 흥, 두고보라지. 제대로 삐뚤어질테다, 이제 나도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 안할거임!(그런다고 겁낼 안여사가 아니라는게 학계의 정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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