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부엌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이에요

by 피어라

글을 쓰듯 밥을 짓고, 마음을 정돈하듯 부엌을 치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요리솜씨만큼이나 글도 감칠맛 납니다. 자신의 요리를 직접 찍은 사진들은 또 얼마나 군침을 돌게하는지요. 그런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면 부럽고 신기합니다.


브런치 메인에도 음식과 살림 얘기가 이혼이나 퇴사 만큼이나 자주 올라옵니다. 직접 요리하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음식에 얽힌 추억이나 에피소드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쉽습니다. 그마큼 먹거리 얘기는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얘기겠죠. 저역시 음식에 관한 글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거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요리라니요. 물리학자나 천문학자, 혹은 수학자만큼이나 아니, 아예 지구와 안드로메다, 아메바와 코끼리만큼이나 저와 먼 얘기입니다.




저는 요리를 잘 못합니다. 정확히는 하기 싫어합니다. 힘들고 번거롭고 귀찮습니다. 들이는 수고와 시간에 비해 먹는 건 순식간이고 그 후에는 형벌같은 설거지가 기다립니다. 만들기 위한 재료 준비와 손질의 지난한 과정도 성격 급한 사람에겐 버겁습니다. 냉장고 정리며 각종 양념 마련은 또 어떻고요. 도대체가 하루 세 끼를 먹는 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만들고 치우는데 들어가는 제 노고와 시간도 아깝습니다. 아예 집에 부엌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커피물이나 끓이고, 가끔 라면 끓일 포트놓을 공간 정도만 있으면 됩니다. 이 얘기를 들으신 제 팔순노모는 뒤로 넘어가실 뻔 했습니다마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공간도 여유롭게 쓸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냄새나 열기 문제도 해결되지요. 밥은 어떻게 먹냐고요? 홍콩처럼 매식을 하는거죠. 아예 우리 사회 전체가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대충 국회 앞에 나가서 시위하고 싶은 심정!) 할머니가 되어서도 집앞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로 브런치를 먹고 이른 저녁은 근처 한식부페 같은 밥집(집밥이 아닙니다!)에서 깔끔하게 먹고 돌아오면 좋겠어요. 제가 바라는 노년의 모습입니다.



물론, 제가 아주아주 부자라서 집에 전용쉐프가 있다거나 뉴욕에서 스테이크 먹고 일본가서 스시 먹고 독일가서 맥주와 소시지를 먹는다면 얘기가 다르겠죠. 이런 상상이라니, 차라리 제가 차은우가 되는 상상을 하는게 더 낫겠네요. 하나마나한 소리라는거죠.


요리를 하기 싫어한다는 데서 예상할 수 있겠지만, 저는 요리를 못합니다. 제가 한 음식이 그렇게 맛있지가 않아요. 겸손이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 제 동생가족까지 제가 만든 음식을 먹어본 사람들의 총평입니다. 레시피따위 없이 그냥 제 마음대로, 제 입맛대로 대충, 아무렇게나 막 만들어서 같은 음식을 해도 매번 맛이 다 다릅니다. 잘하고픈 의욕도 의지도 없어서 더 솜씨가 나아지지 않는 걸테죠. 맞아요, 못한다고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애들 이유식 만들때가 제 요리의 리즈시절, 황금기, 화양연화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정말 생존요리 수준으로 하루하루를 하루살이처럼 살았네요. 가끔가다 세끼 밥으로도 부족해 베이킹이라거나 떡이나 디저트를 만드시는 금손을 보면 넘사벽을 넘어서서 다른 차원의 사람을 보는 기분이 듭니다. 요리에 대한 열정, 탐구심, 집중력 그 중에 100분의 1만이라도 제게 있었으면 어느 분야이건 저는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 쉐프들이나 요리 프로그램을 볼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저는 집에서 부엌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집에서 제일 싫어하는 공간이 부엌입니다. 앞으로 아파트건설사들은 이런 주부들의 욕구와 니즈를 잘 파악해서 부엌이 없는 아파트를 지어야합니다. 분명 대박을 칠겁니다.


제가 살 공간에는 침실겸 서재, 식물 키울 베란다, 욕실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정말 검소하고 소박하지 않나요?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청백리로 칭송받았을 겁니다. 네.네.


이상, 오늘도 식구들 먹을 음식을 고민하며 배달앱과 외식과 집밥이라는 미궁에서 헤매다가 출구를 못 찾고 쓰러져 버린 경기도 서남부 어느 주부의 슬픈 사연이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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